불과 몇년 전만해도 전북은 영화에 관한한 불모지였다. 이미 고인이 된 이강천감독과 탁광씨(전 전북영화협회장)를 중심으로 50년대와 60년대, 전주가 충무로에 버금가는 영화생산지였다는 자부심이 무색했을 만큼 영화의 변두리였다. 전주가 비로소 영상도시로의 청사진을 다진 것은 지난 99년 전주국제영화제(JIFF)가 고고성을 터트리면서부터서다.
그리고 JIFF가 뿌린 지역의 영화인프라를 텃밭삼아 전주단편영화협회가 결실이 됐다.
영화제작의 저변을 넓혀가는 첨병들인 이들은 영화제작의 중앙집중화를 극복하고 ‘영화의 문호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주고 있는 문화게릴라다.
전국을 통틀어 영화제작단체라야 서울, 대전, 대구, 부산 등에 불과하고 그나마 중소도시에는 전무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주를 기반으로 한 자생적인 영화제작단체의 출범은 의미가 남다르다.
2000년 12월 조시돈대표(42·전주효문여중 교사)를 비롯해 김정석(29), 유영수(32), 김은혜(28), 김희(23), 신귀백씨(45)를 주축으로 발족한 전주단편영화협회는 이제 식구수를 약 70명으로 늘리고 영화운동의 밀알임을 자임하고 있다. 갓 스무살을 넘긴 김반지·장광수씨부터 50대인 윤석래씨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전주국제영화제의 디지털필름워크숍 수강생들이 협회출범의 모태가 됐다. 1기출신 가운데 조대표를 비롯한 13명이 합류했고, 전주영화제 자봉출신인 김정석씨를 비롯한 영화매니아들이 합류해 근간을 이뤘다.
협회는 15개월째라는 일천한 연륜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소모임을 두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영화를 만드는 교사모임’과 ‘시네마팩토리’(Cinema Factory·일명 시팍), ‘학생영화모임’등으로 특화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역내 영화네트워크화를 지향하겠다는 협회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의 제작한 영화편수도 만만치 않다. 지금까지 ‘싸발놈’(연출 김정석)을 비롯해 ‘만경강’(연출 조시돈), ‘거리’(연출 노윤) 등 20여편의 디지털 6㎜단편영화가 배출됐다. 아직 수도권지역에 비하면 열악하지만 전주의 영화광들이 ‘그들만의 영화’를 양산하고 있다는 점은 이들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영화제작은 협회내에 시네마팩토리가 가장 활발하다. 최광석씨를 비롯한 10명이 활동하고 있는 시팍은 지금까지 10여편의 영화를 발표, 협회의 영화제작열기를 달구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정낙성교사 등 20여명의 도내 중등교사들로 구성된 영화를 만드는 교사모임도 지난해말부터 영화제작 노하우를 교육현장에 접목시키고 있다. 이 모임은 다음달께 ‘영상교육연구회’로 이름을 바꾸고 교사들의 시각으로 제자들과 교육현실을 담아내는 영상물을 제작할 계획이다.
김정석씨는 “회원들의 작품이 서울지역에 비하면 아직 내러티브나 촌철살인의 주제의식이 뒤떨어진다”면서도 “영화에 대한 열의 만큼은 어느 지역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협회가 영화제작과 함께 심혈을 기울이는 행사가 전주시민영화제다. 다음달이면 제2회를 맞는 시민영화제는 회원들을 비롯한 영화동호인들이 십시일반으로 후원금과 자금을 모아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시민중심의 영화제다. 내가족과 이웃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영화들을 일반에게 선보이는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도시규모나 정서면에서 전주 만큼 단편·독립영화에 적합한 도시도 드물다”는 조시돈대표는 “전주가 단편·독립영화의 메카로 도약한다면 결국 한국영화의 중심지로 자리잡을 것”이라며 “전주단편영화협회가 ‘영상도시 전주’를 앞당기는 주역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런 만큼 협회가 앞으로 풀어야할 숙제와 넘어야할 장벽이 높다. 무엇보다 지역민들에게 독립영화에 대한 비전과 확신을 심어주는 일이 절실하다.
협회사람들이 ‘올해안에 뭔가를 보여주겠다’며 의지를 다지는 것도 굳이 지역의 영화매니아들에게 서울지역을 기웃거리지 않아도 단편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이들이 오늘도 디지털카메라와 촬영장비를 들고 지역을 누비는 동안 영상도시의 밑그림이 더욱 튼실하게 그려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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