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낭만주의의 마지막 기수였지만 나치즘에 반대, 조국을 떠나 스위스로 망명했던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1877∼1962). 우리에게는 ‘데미안’과 ‘유리알 유희’, 그리고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로 더 친숙하다.
세계적 문학의 거장으로 남아있는 그의 거대한 발자취가 전주에 온다.
28일부터 7월 31일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시실에서 열리는 ‘헤르만 헤세전’. 중앙공연문화재단이 여름방학을 앞두고 마련한 기획전으로 헤르만 헤세의 삶과 예술, 그의 작업과 작품들을 손에 잡힐 듯이 보여주는 자리다. 헤세의 대표적인 문학작품 초판본과 회화, 육성 레코드, 헤세가 사용했던 안경, 필기구, 메달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한국에 헤세 박물관을 세우겠다는 뜻을 세운 이상용씨(헤세박물관 건립위 사무총장)가 15년에 걸쳐 유럽을 주름잡으며 수집한 헤세의 유고·유품·서한들이다. 현재 헤세박물관건립위원회(위원장 표재순)가 소장하고 있다.
모두 2백50여점의 헤세 관련 유작과 유품이 소개되는 이번 전시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되는 감상 포인트는 헤세의 친필사인이 든 초판본들. 헤세의 초판본은 독일의 쉴러고문서협회가 공식인정한 것만 해도 모두 5백59종. 반나치 활동으로 인해 스위스 망명기간 동안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4∼5쪽 분량의 소책자까지 만들어 이웃에게 팔았기 때문이다.
이중 20여권이 이번 전시회에서 공개된다. 1919년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발표했던 ‘데미안’을 비롯, 1946년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긴 장편소설 ‘유리알 유희’(1943년), 작가로서 명성을 얻게 해준 ‘페터 카멘친트’(1904년) 등이다. 이중 초기작 ‘왕의 축제’(1899년)는 전세계에 단 3권밖에 남아 있지 않은 희귀본이다.
헤세가 앙드레 지드, 슈바이처 박사 등 세계의 지성인과 주고 받은 편지와 엽서와 헤세에게 헌정한 시들도 선보인다.
40세 이후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의 삶을 극복하기 위해 그렸다는 수채화 50여점도 함께 한다. ‘호수 옆 마을’(1937년) ‘라고 너머의 교회’(1931년) 등 평온한 시골 전원을 묘사한 수채 풍경화와 함께 드물게 사람이 등장하는 ‘정원사 헤세’(1932년), ‘헤세의 초상’(1926년) 등이 눈길을 끈다.
그가 숨을 거두기 일주일전에 쓴 마지막 작품 ‘꺾어진 가지’원본도 전시된다. 한국에서 발견되어 화제가 된 이 작품은 죽음을 미리 예견한 듯, 생과 죽음에 대한 단상을 꺾어진 나뭇가지에 빗대어 쓴 시와 그 옆에 숲 속의 나무를 그려놓은 수채화로 이루어졌다.
독일과 남다른 인연이 있는 백남준이 헤세의 소설제목을 딴 비디오아트 ‘싯다르타의 초상’(2000년작), 그리고 세계 각국의 문인들이 헤세에게 헌정한 1백여편의 시를 모은 단행본도 전시된다.
오늘을 사는 모든 세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한번쯤은 그의 글을 읽고 청춘의 괴로움과 아름다움, 인생의 고독함과 위로를 곱씹게 해준 작가의 삶과 예술세계를 찬찬히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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