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성장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사이버세계에 한 형태로 존재하며 밤낮없이 무한대로 성장한다. 무엇인가? 여론방, 토론방, 방명록 등의 이름을 가진, 웬만한 사이트에는 빠짐없이 있는 게시판이다. 하루에도 수천만건씩 올라오는 글의 생산자인 네티즌들은 이를 통해 자기 말의 주인이 되는 경험을 한다. 네티즌 혁명의 참된 의미는 바로 '말의 혁명'이다.
인터넷은 여론 형성의 층을 수평으로 놓이게 했다. 더 이상 엘리트집단의 전유물이 아닌 것. 집, 사무실, PC방…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면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고 여론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나 병역 가산점 제도, 의약분업 등 사회적 쟁점에 대해 뚜렷한 주관이 담긴 글을 공개토론장인 게시판에 올려 나름대로 사회적인 의제설정기능을 행사한다.
그래서 게시판을 통해 진행되는 사이버 문화를 언론의 또 다른 유형으로 평가, ‘게시판 저널리즘’이란 말을 탄생시켰다.
매체 전체의 논지를 조정하고 책임지는 주체가 불분명하지만 즉각적인 반응과 폭발적인 전파력에 힘입어 강력한 여론형성을 행사하고 있는 점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문화현상은 디지털기술의 혁신과 함께 지속, 발전될 것이고 그 영향력 또한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정보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보다 무차별적인 공급이 앞서고 익명의 그늘에 숨어 언어폭력을 퍼붓는 사이버 글쓰기 관행이 지속되는 한 신뢰 있는 매체로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어렵다. 이는 토론을 활성화시키기 보다 갈등을 증폭하거나 침묵을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일침을 가하는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네티즌의 유형을 다양하게 분류한 ‘이런 사람 꼭 있다’라는 글이 유행,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자신은 어느 형의 네티즌인지 돌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법하다.
첫 번째는 ‘일당백型’이다. 흑백논리와 고정관념, 감정적인 판단으로 무장한 이들은 무서운 글빨(?)로 네티즌의 여론에 맞서며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는 역할을 한다.
올리는 글마다 상당한 조회 숫자와 수많은 격려 글을 자랑하는 ‘스타型’과 회원 가입은 돼 있지만 글을 쓰지 않는 ‘침묵型’, 평소에는 글 한번 올리지 않다가 논쟁이 격해지면 ‘바보들’하며 한마디 던지고 사라지는 ‘허무型’, 비난이 시작되고 패가 갈려 토론이 벌어지면 유리해 보이는 쪽에 기생해 되지도 않는 논리로 답글만 올려대는 ‘맞장구型’도 있다.
주로 나이 어린 네티즌들에서 많이 발견된다. ‘말대꾸型’은 제대로 된 글 하나 못 올리면서 남의 글에 태클을 거는, 다시 말해 사촌이 논을 사면 배 아픈 타입이다.
모든 지식을 총 동원해 글을 쓰는 ‘백과사전型’과 ‘귀공자型’도 있다. 논리 정연한 글에 경어까지 사용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뼈가 담긴 글을 올리는 타입. 아군일 때는 상대의 약점을 잘 긁어 줘 통쾌하지만 의견이 다를 때면 만나서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부류다.
이와 비교되는 유형이 ‘막가파型’이다. 갑자기 나타나서 비방과 욕설로 도배를 하고 게시판이 너덜너덜 해질 때쯤 유유히 사라지는 대책 없는 형으로 어떠한 논리로도 그를 제압할 수 없고, 제압하려 했다가는 오히려 더 큰 화를 당할 수도 있다. 심하면 법정분쟁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글을 올리는 즉시 삭제되거나 항의성 댓글이 달리면서도 끊임없이 올리는 유형도 있다. 가입만 하면 돈을 준다는 황당한 글을 올리는 ‘돈벌기 사이트型’이다. ‘한국이 위험해요型’도 있다. 독도문제 등 주로 일본과 관련된 일을 여러 게시판에 기를 쓰고 복사해 놓는 타입이다.
이런 네티즌들의 활약으로 짧은 시간에 많은 곳으로 정보가 쉽게 퍼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가끔 사실무근인 내용도 퍼 올리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복사기型’으로 세분화되기도 한다.
이런 글쓰기 유형 속에서 ‘게시판에서 쌈 나는 순서’라는 글도 큰 호응을 얻었다. 사이버 공간이 현실과 다르지 않음을 나타낸 글이다.
‘어제 중국집 가서 짜장면 시켜 먹었는데 정말 맛있더군요’라는 평범한 문제 제기로 시작, 평범한 반론과 재반론이 진행되다가 상대의 말꼬리를 잡고 상대가 좋아하는 대상을 깎아 내리면서 싸움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제3자의 참여로 패가 갈리기도 한다.
싸움이 시작되면 왜 싸움이 시작됐는지 조차 모호하다. 상대의 글에서 옥에 티를 찾아 흠집을 내고 ‘본질을 모르시나요’등의 문장으로 깔보기 시작한다.
말투를 붙잡고 늘어지기도 한다. ‘시비는 그쪽이 먼저 걸었습니다’라며 책임을 전가하고 상대를 무시하는 문장을 올린다. 당연히 반말이다. 그리고 나이와 직업, 학력 등을 묻는다. 결국 누가 더 심한 욕설을 하는지, 경쟁이 시작된다.
간혹 말리는 사람과 엉뚱한 논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등장하지만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면 함께 진흙구덩이에 빠져들기 일쑤다.
'제게서 나온 말이 다시 제게 돌아간다'는 속담이 있다. 말이란 한 번 하고 나면 끝없이 돌고 보태어져 결국 자신에게 해롭게 변하여 돌아온다는 것. 말이 문자로 표현되는 글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는 것은 두렵고 조심스런 일이다.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개방되어 있는 인터넷 공개 게시판에서의 글쓰기는 그 파급력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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