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뛰어넘은 기록. 유성기에 실려 들릴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소리의 신비로움에 관객들은 마음을 빼앗겼다.
24일 밤 10시, 전주시 교동 한옥체험관에서 열린 고음반감상회는 진지하고 흥미로웠다. 판소리매니아 30여명이 참여한 이날 고음반감상회는 우리소리의 기록의 역사와 그 의미를 새롭게 깨우쳐 준 자리. 밤은 깊어 자정을 훌쩍 넘기고 있었지만 누구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고음반은 국가기록물입니다. 단순한 오락물, 매체로서의 의미를 뛰어넘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음악이 대부분 악보 없이 전승이 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고음반은 자료로서도 매우 귀중한 기록물인 셈입니다."
판소리연구가 배연형씨(45)는 최초의 음반 기록물인 양산도(1907, 경기민요, 관기 최홍매 노래) 당대의 명창 이동백의 '심청가', 빼어난 피리연주와 소리를 곁들인 김택준의 소년과부가(少年寡婦歌), 지금도 널리 애창되는 윤심덕의 '사의 찬미', 거문고의 명인 백낙준의 깊은 울림의 연주, 그리고 백범 김구 선생의 육성까지 이어진 '남겨진 소리'들을 들려주면서 고음반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일깨웠다.
"일제는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빼앗았습니다. 기록의 왜곡과 인멸도 그중 하나입니다." 1910년대와 20년대에 제작된 한국음반은 모두가 일본축음기회사를 통해 녹음된 나팔통식 음반 4백여종. 배씨는 그러나 그중 대부분이 기록으로만 남아 있을 뿐 아직 절반도 채 찾아내지 못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80년대 초반부터 고음반 발굴과 수집에 매달려온 배씨가 소장한 음반은 대략 2천여장. 그 자신은 결코 많지 않은 양이라고 말하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음반 기록물이나, 그가 가장 인상깊다고 표현한 김구 선생의 육성 등 가치가 높은 음반들이 적지 않다. 발품 팔아가며 고물시장을 뒤져온 그는 그 작업을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이기도하다."고 표현했다.
우리 고음반 발굴과 연구의 진전은 한국고음반감상회 이보형회장의 열정 덕분이라고 소개하는 그는 아직도 발굴해야할 고음반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그만큼 발굴의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다.
"고음반을 통해 서양풍이 채 물들지 않은 전통음악의 순수한 모습이 어떠했고, 그것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읽어내는 의미"를 강조하는 그는 "우리의 전통사회에서는 외침이 모두 음악이었다. 음반에 기록된 소리를 듣다보면 당대의 모습이 금방 손에 잡힐 듯 하다"고 말한다.
현직 교사(서울 휘경여중)이면서 판소리 연구와 고음반 발굴을 통한 문헌 정리작업에 열정을 쏟고 있는 그는 신나라레코드사의 고음반 복각작업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해온 연구자. 올해 소리축제를 통해 고음반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높일 수 있는 것이 반갑다고 말했다.
그가 진행하는 고음반감상회는 25일 '창극의 발자취'를 감상한데 이어 31일과 9월 1일에 다시 열린다. 명인명창들의 음반을 만날 수 있는 시간. 판소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놓치기 아쉬운 귀한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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