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전남 곡성 출신으로 일본에서 유학생 복음화와 선교사 유치운동에 앞장섰던 이수정(李樹廷·1842∼1886)의 한시 병풍이 일본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발견돼 관심을 모은다.
이번에 소개된 병풍은 지난 1883년 일본 교토(京都) 도시샤(同志社)대학 창립자인 니지마죠(新島襄) 목사가 도시샤 교회에서 성례전을 베풀 때 이수정이 즉석에서 지어 증정한 것으로, 현재 도시샤 대학 내 니지마죠 생가(1985년 교토시유형문화재 지정)에 보관돼 있다. 도시샤 대학은 일본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의 저항시인 윤동주의 기념비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평상시 일반인에게 비공개되는 이 작품은 지난 2000년 11월 모모야마(挑山)학원대학 다이다(太田雅夫)명예교수에 의해 우연히 발견돼 일본 학계에서 큰 화제가 된 바 있으며, 지난달 교회사가인 김수진 목사(장로회신학대 신학원·대학원 강사)가 어렵게 촬영에 성공해 본보에 전달했다.
이수정은 임오군란(1882) 당시 시해 위기에 처한 명성황후를 궁녀차림으로 변장시켜 지게에 지고 충청도 충주로 도망시켜 구출한 인물. 큰 공을 세운 이수정은 명성황후의 벼슬 제안에도 불구하고 그 해 9월 2차 신사유람단에 참가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 만난 유명한 농학자 쓰다젠(津田仙)으로부터 한자로 된 신약성서를 선물받은 것을 계기로 기독교에 입문한 이수정은 1883년 7월과 11월 국내에 선교사를 보내달라는 서신을 미국으로 보내는 등 유학생 복음화와 선교사 유치운동에 전념했다.
이를 계기로 1884년 9월20일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인 의사 알렌과 1885년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서를 든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인천에 상륙하면서 한국선교가 본격화 되는 등 초기 한국 기독교 발전의 도화선이 됐다.
이수정이 남긴 한시 작품에는 신앙생활의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이 잘 표현돼 있다.
특히 신사유람단에 참가해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뒤 4년 만에 귀국해 1886년 보수파에 의해 처형당할 때 까지 그가 남긴 신앙고백서 중 일본에서 발견된 유일한 한시 작품이라이라는 점에서 더욱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김 목사는 “전라도가 낳은 구한말 개화파 인물인 이수정은 초기 한국 기독교에 지대한 업적을 남긴 독보적 존재”라며 “이수정이 직접 쓴 한시 작품을 1백19년 만에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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