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연극배우 장민호(78). 그의 삶 자체가 치열한 연극정신의 구현이었고 그의 연기는 후배들에 하나의 교본으로 자리잡았을 정도로 연극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다음달 13일까지 열리는 전국연극제 심사를 위해 전주를 찾은 그는 상식이 무시되고 있는 요즘 연극계의 풍토를 토로했다.
“연극은 만드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을 위한 예술입니다. 하지만 배우의 말과 연기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 합니다. 연극인 스스로 좋은 작품과 좋은 관객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안들리고 안보이는’ 연극의 성행은 연극인들의 연극정신 결여와 연극의 상업주의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왜 연극을 하는가 하는 자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초창기 연극계엔 완벽한 연극과 연기를 향한 꿈이 있었는데 요즘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연극은 정신과 선후배간 예의를 갖추는 ‘질서’가 바로 서고 기본기를 탄탄하게 갖출 때 비로소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연극인의 자의식 회복과 기본역량 개발만이 ‘연극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그는 “쉽게 가는 연극을 피하고 인기에 치우치지 말라”고 후배 연극인들에게 당부했다.
젊은 관객 취향에 맞춰 코믹이나 마임위주의 가벼운 연극을 만들기 보다는 삶의 희노애락이 밑바닥에 깔린 연극을 생산, 관객들에게 인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
그는 후배들에게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연극인이다. 월남후 47년 조선배우학교에 들어가 시작한 그가 55년 연기인생동안 출연한 작품만 1백70여편. ‘햄릿’ ‘금삼의 피’ ‘파우스트’ ‘광야’등 매 작품마다 우리 연극계의 주목을 끈, 국내에서 연극으로 작품화 한 것 자체에 큰 자부심을 불러일으켰던 작품들이 수두룩하다.
특히 그는 지난해 노구를 이끌고 자전적 연극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이근삼 작)에 출연, ‘배우는 무대에서 몸짓으로 말해야 한다’는 연극철학을 후배들에게 몸소 실천했다.
올해 한차례 앵콜공연을 가졌던 그는 “내 이야기를 연극으로 풀어놓는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그동안 연륜이 쌓였는지 모든 것이 잘풀려 기대 이상이었다”고 말했다.
서울이 주 활동무대지만 전국연극제에도 관심의 끊을 놓지 않았던 그는 “스무살을 맞은 전국연극제는 우리나라 연극계의 큰 산맥”이라고 말했다.
“해마다 연극제가 열리면서 커다란 봉우리가 생기고 있습니다. 역량있는 연극인들이 연극제를 통해 인정받아 연극계를 이끌 재목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꼭 지켜나가야할 바람직한 행사입니다.”
더욱이 올해는 해외팀까지 참가, 연극제 의미를 더욱 뜻깊게 만들었다는 그는 “앞으로 미국 뿐아니라 유럽과 러시아 등 세계 각나라의 한인극단의 참여를 유도했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배우에게 은퇴는 죽음뿐”이라는 그의 바람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무대에서 혼을 담은 연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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