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公醉後橫拖筆하여 顚倒春秋花木心이라.
천공취후횡타필 전도춘추화목심
하늘이 취한 후 멋대로 붓을 끌어다 색칠을 하여 봄의 꽃과 가을 나무의 마음을 바꾸어 놓아 버렸구나.
청나라 사람 장초(蔣超)가 쓴 〈산행영홍엽(山行詠紅葉:산길을 가며 붉은 나뭇잎에 대해 읊다)〉라는 7언 절구 시의 3, 4구이다.
장초는 이 시의 첫 구절에서 "누가 녹음 위에다 단청(丹靑:여러 색깔)을 칠하였오?(誰把丹靑抹樹陰)"라고 물은 다음, 두 번째 구절에서는 "서늘한 공기에 실려오는 가을 향기와 온갖 붉은 열매들이 푸른 하늘과 흰 구름 속에서 농익어 가는 구나(冷香紅玉碧雲深)"라고 하였다.
그러한 연후에 3, 4구에 이르러서는 첫 구에서 물었던 물음에 대한 답을 "술 취한 하늘이 제멋대로 붓질을 하여 가을 나무에 온통 형형색색의 꽃 색깔을 칠함으로써 가을 나무의 마음을 봄꽃의 마음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한 것이다.
하늘이 취하여 시들어 가는 가을 나무들을 잠시 회춘시켜 놓았다는 뜻이다. 참으로 재미있는 표현이다. 가을이 깊어가고 단풍은 절정에 이른 것 같다.
불타는 단풍 앞에서 시들어 가는 가을의 모습을 볼 게 아니라, 꽃처럼 붉게 타는 젊음과 정열을 보도록 하자. 가을은 조락의 계절이 아니라 지난 여름, 푸름을 믿고서 조금은 방자하게 살았던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면서 다시 마지막 정열을 불태워 새 삶을 잉태하는 계절이다.
내년의 봄을 위해 많은 것을 저장하는 계절인 것이다. 하늘이 기분 좋게 취하여 특별 써비스로 준 단풍이라는 회춘의 정열을 잘 이용하도록 하자.
醉:취할 취 橫:가로 횡 拖:이끌 타 顚:거꾸러질 전 倒:거꾸러질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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