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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준시인의 새해편지] 우리 새해에는 ‘광장’을 만들자

 

 

이렇게 모악산 자락에 들어와 살게 된지도 어언 10여년을 넘겼다.

 

매순간을 처음처럼, 그 초발심의 마음처럼 살기는 어려운 것이지만 한달 두달 달력을 넘길 때마다 한해 두해 어느덧 해가 가고 또 바뀌어 갈 때마다 너 혹 부끄러움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 아니냐 반문해본다.

 

며칠전 일요일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산에 가지 않겠느냐는 말, 새해 해돋이를 보려고 사전답사를 해야겠는데 모악산에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 어디 다른 곳을 찾아보려 한다는 것이다. 선배와 함께 운암호를 끼고 돌며 국사봉에 올랐다.

 

능선을 타고 오르는 동안 그 아래 펼쳐지는 구불구불 운암호의 물길이 맑고 투명한 겨울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멀리 겹겹의 산능선들 우리도 이제 이렇듯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를 껴안으며 나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내 안과 밖의 불화를 일깨운다.

 

저 산을 넘고 넘어 저 멀리 반달곰의 지리산이 있을 것이다. 남으로 노루들이 뛰노는 한라산이 저 너머 바다건너 있을 것이며 북으로 나 아직 발걸음 한번 새겨보지 못한 금강산이며 묘향산 그 너머 흰눈의 장관을 이루고 있을 천지의 백두산이 있을 것이다.

 

거기 산 위에 서서 나무를 바라보았다. 한 그루 나무로 태어나 자라오기까지의 시간을 생각했다. 때로 바람 앞에 떨며 가지가 꺾이고 흔들렸을 날들을 떠올렸다.

 

더운 여름날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며 지친 것들을 쉬게 해주었을 가지 많은 나무의 그늘을,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던 나무를 생각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도 때로 그러하리라. 가지 많은 나무처럼 품안이 너그러워져서 함께 껴안고 나가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 것이리라.

 

돌이켜 보면 나이 사십에 들어서면서부터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일도 들어주는 일도 귀찮아지기도 했다. 불쑥불쑥 노여움이 잦았던 것도 사실이다. 내 생각이 더 옳다고 남의 말을 무시해버리는 일들도 많았다.

 

거리로 나가본다. 거릴 것 없는 옷차림과 머리빛깔의 젊은 청년들을 대할 때 처음에는 거부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 생각 이내 바뀌고 말았다. 나도 좀 젊었으면 저렇게 해볼 수 있었을까. 아니다 아니었을 것이다. 내 젊음이 그렇게 골방 속에서 유폐되며 흘러갔듯 나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름 붙여진 광장하나 없는 내가 사는 전주의 집회에, 광화문의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추모시를 낭송하면서 나는 다시 생각했다. 이제 우리 사회도 광장으로 나아가는 사회가 되고 있구나. 그건 성숙한 시민사회로 들어서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거기 나온 아이들을 보며 청년들을 보며 이 나라의 젊은 내일과 희망이라는 믿음을 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그건 저 젊은이들이 개울을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는 일일 것이다. 강을 건너는 다리가 되어주는 일일 것이다. 거친 바다를 건너는 튼튼한 나룻배가 되는 일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땅이 올바르게 가는 길에 한 자루의 삽이나마 들고 작은 땀을 보태야 하리라. 새해 뜨는 해를 바라보며 다짐해야 할 일이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 그건 자신이 살아온 길 위에 서서 조용히 반문하며 아이들에게 돌려 주어야할, 이제 비로소 해야할 일을 찾아 다시 주먹을 불끈 쥐어보는 일일 것이다.

 

이 땅의 희망처럼 솟는 아침해처럼 붉은 주먹을...

 

/빅남준(시인)

 

* 모악산방에 살고 있는 박남준씨는 57년 전남 법성포에서 태어났으며 84년 시 전문지 ‘시인’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1990), ‘풀여치의 노래’(1992),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1995),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2000)이 있고, 산문집으로 ‘쓸쓸한 날의 여행’(1993),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1998), ‘별의 안부를 묻는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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