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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문화희망, 이사람!] 섬유공예가 송수미씨

 

 

소박한 일상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

 

그의 작업은 전통적 가치관에 대한 새로운 발견 위에 서있다. 일상적 경험으로 비추어보자면 ‘발견’은 일정한 과정을 겪고서야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어서 어느 날 우연한 순간에 문득 섬광과 같은 존재로 찾아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발견’은 철저한 자기 노력과 탐색으로 빚어지는 일종의 ‘보상’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것을 찾아가고 찾아내는 과정. 공예가 송수미(38)가 자신의 작업에 부여하는 의미는 바로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만나게 되는 새로운 ‘발견’인 것이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제법 쌓이기 시작하면서 거리는 질척이고 있었다. 중화산동 동네 공원을 끼고 있는 야트막한 고갯길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은 뜻밖에도 정갈했다.

 

한지와 황토색 염료가 결합한 화폭 위의 나무, 색 바랜 흑백 사진이 주는 은밀한 추억, 여백의 넉넉함을 즐기면서 사유하는 의식의 세계, 기하학적인 문양과도 같은 문자와 기호의 자유로운 결합, 그리고 전통 문양을 정제한 디자인적 요소까지.

 

대학(전주대)을 졸업한 직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그의 작업 흔적들은 이 작업실 안 곳곳에서 세월을 읽어가고 있다. 강렬한 이미지로 눈길을 끄는 황토색 화폭. 

 

“사람이 그리웠어요. 작업에 대한 확신도 없을 때였지요. 한지는 우울하고 마음속 깊이 자리한 나의 슬픔을 표현하는데 매우 좋은 매체였지요.”

 

10년 전 쯤에 시작된 한지 작업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꽤 오랫동안 달뜨게 했지만 근래의 작업에서 한지는 더 이상 그에게 새로운 것이 되지 못한다.

 

주목 받는 섬유공예가 송수미. 굳이 가리자면 그의 데뷔는 93년 첫 개인전부터지만 그의 작업은 91년 전라북도 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한 즈음부터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독창적인 화법과 남다른 표현의 세계, 톡톡튀는 아이디어 대신 깊이 천착해 들어가는 전통에의 해석. 섬유공예를 전공했으면서도 실용성을 선택하는 대신 순수한 조형적 언어로 공예의 영역을 확장해온 그의 특성은 특별한 조형성으로 발휘됐다.

 

93년과 99년, 그리고 작년의 개인전까지 이어진 그의 작업은 형식적으로는 전통과 실험적 양식의 결합이지만 주제는 일관되게 자기존재에 대한 사유와 가족사를 관통하는 것이다.

 

“사소한 것들, 일상적인 것들에 마음이 가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족사에 대한 관심은 작가들에게 가장 은밀하면서도 정직한 것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의 주제의식이 가장 명료하게 드러내는 방식은 역시 사진 기법을 차용한 작품이다. 빛바랜 흑백사진을 통해 삶의 잔잔한 풍경과 그것이 지닌 시간적 역사성의 의미를 드러내는 방식. 그가 최근에 몰두하고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섬유공예의 영역에서는 표현 매체의 물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기 마련이지만 그는 재료를 먼저 선택하지 않는다. 프린팅과 꼴라쥬, 열전사를 비롯한 다양한 기법을 선택하고 나서야 그에 맞는 재료를 선택한다. 그의 작업이 언제나 새롭고 진지한 덕목이 있다면 이런 작업적 특성 때문일 것이다.

 

3년 전부터 공예의 실용성에도 눈뜨기 시작한 그는 조형성을 강조하는 작업과 함께 섬유디자인의 안정적 틀을 실험할 수 있는 텍스타일 형식을 도입한 상품으로서의 제작에도 열심이다. 예술적 언어의 변용만을 고민해온 그로서는 특별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디지털 기술을 응용한 프린팅 기법에 흥미를 느끼고 있어요. 텍스타일 작업을 통한 상품화도 그렇지만 조형성을 충분히 살려내는 회화 작품으로도 무한한 가능성을 읽어내고 있는 중이지요. ” 

 

이쯤 되면 새로운 것, 특별한 것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정작 전통이나 지역적 정서, 소박하고 사소한 것들로부터 눈길을 돌리지 못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법하다.

 

“저는 시골 출신이예요. 도심의 화려한 빌딩 대신 논둑길 뛰어다니며 자랐지요. 자연스럽게 배인 토속적인 미감이 우리의 전통이나 한국적 이미지를 붙들게 했을겁니다.”

 


우리 삶에 대한 사랑을 잔잔하고 부드럽게 풀어내고 싶다는 그는 특별한 것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넘치는 것은 싫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그가 올해는 자신의 삶에 새로운 틀을 만들었다. 조형미술학 박사과정(원광대)을 시작한 것도 그렇고, 지난해 마음 맞는 여성작가들과 함께 만든 그룹 ‘플라스틱’의 활동이나 전주가 아닌 다른 도시에서 계획중인 개인전도 그 틀을 만들어가는 중심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부지런한 작업으로 주목을 모아온 그는 이러한 새로운 틀을 자신의 나태함을 털어버리는 시도라고 명쾌하게 말했다. 서른여덟해의 세월이 무색하리만큼 그는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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