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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위무대밖] 직장인 극단 '심심'

 

 

#1.스물일곱살 청년 서대원씨는 평강한의원 사무장이다. 꼼꼼한 일처리 덕분에 한의원에서 인정받고 있지만 내성적인 성격 탓에 '튀지 않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런 그가 요즘 요상한 행동(?)으로 한의원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교양 넘치는 여자 목소리를 내거나 우아한 자태를 흉내내는 우스꽝스러운 광경 때문이다.

 

#2.지난 5일 밤 8시 전주 동문사거리에 자리한 공공스튜디오 '심심'. 10여평 남짓한 사무실이 연극 연습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대원씨 처럼 하루 일을 끝내고 모인 직장인들이다. 회사 일로 지칠만도 하지만 모두 생생하고 진지하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이루어진 연습은 밤 11시를 넘겨서야 매조지했다.

 

직장인들로만 구성된 아마추어 극단 '심심'이 전주에서 뜬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객석을 뛰어 넘어 무대에 올라 '또 다른 나'를 찾아보자는데 의기투합했다.

 

아직은 초보극단. 서툴지만 열정 하나로 모인 사람들은 모두 9명. 대원씨를 비롯해 김기옥(39·삼례공고 교사) 김덕현(27·전주유치원 교사) 김민경(24·실로암신문 편집자) 김병수(36·심심 대표) 김희선(31·소리전당 기술팀) 이기룡(39·예건 대표) 임성현(34) 홍성란(30·우진디자인 편집디자이너)씨.

 

지난 95년 연극활동을 함께 했던 병수씨와 성란씨가 지난해 12월 직장인 극단을 만들어 보자는 뜻을 세워 알음 알음으로 모신(?) 사람들이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도 있다. 소리의 전당 조명 담당 희선씨. 평소 연극에 관심이 많던 그는 극단 창단 소식을 듣고 스스로 참여했다.

 

사람은 모였지만 연극을 준비하기엔 막막했다. 대본이나 연기, 연출 등 무엇하나 갖춰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병수씨가 자신의 아내 성현씨를 스카웃(?)했다. 서울의 직장인 극단 '무리'창단 멤버였던 성현씨는 연출분야에서 12년 동안 갈고 닦은 내공이 있었다.

 

성현씨는 서울에서 공연했던 '나는 왜 아버지를 잡아 먹었는가'를 첫 작품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배우 부족이 걸림돌. 차선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된 작품이 '하녀들'.

 

"연극계에서도 난해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작품이어서 아마추어들이 손대기가 힘들다고 여겼지만 단 3명의 배우로 해결할 수 있는 조건이 우리 극단과 꼭 맞아 떨어졌습니다.”

 

캐스팅 된 배우는 민경·성란·대원씨. 민경씨와 성란씨는 하녀자매 역인 '끌레르'와 '쏠랑쥬'를 맡았고, 대원씨는 빗나간 권력층을 은유한 '마담'을 맡았다. 대원씨가 직장에서 여자 흉내를 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주어진 역할이지만 재미있다”는 대원씨는 요즘 연극에 빠져 지내며 성격까지 밝아지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고 말했다.

 

극단 막내인 민경씨는 자타가 인정하는 분위기 메이커. 장수가 고향인 시골소녀로 어릴때부터 TV를 보면서 말투와 행동을 따라하는 것이 그의 특기. 표정이 풍부해 모반을 꿈꾸다 실패하는 하녀 역을 무난히 소화하고 있다.

 

세 배우 중 유일하게 연극 경험이 있는 성란씨는 "95년 무대에 섰을 때 '달라보인다' '살아있다'는 주변의 말을 들었다”면서 "먹고 살기 위해 직장을 다니는 내가 아닌 진짜 내 모습, '살아 움직이는 성란이'를 연극을 통해 발견하는 기쁨이 크다”고 귀뜸했다.

 

이들은 지난달 초부터 매일 밤 8시부터 대본읽기와 연기, 무대 동선 연습을 해왔다. 양사재에 더부살이하며 연습해야 했던 초기, '정말 우리가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함과 회의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서로 의지하고 배우는 과정에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힘'이 쌓여간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용기가 생겼다.

 

제작비 백만원은 십시일반으로 마련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효과를 얻을 수 있는 신공법(?)이 극단 심심의 전략. 무대도 얼마전 공연을 마친 창작극회의 무대를 활용키로 했다.
포스터 제작비용도 회원들의 몫. 회원들 스스로 후원자가 됐고 성란씨가 직접 팜플렛을 겸한 포스터를 만들었다.

 

극단 '심심'은 8일 오후 7시, 9일 오후 4·7시 창작소극장에서 장 주네의 희곡 '하녀들'을 창단 공연한다. 관람료는 따로 책정하지 않았다. '읽지 않은 책이나 작아서 못입는 옷 등'으로 정했다. 관람료 대신 받은 헌 책이나 재활용품을 모아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이웃사랑의 마음을 담았다.

 

연습 도중 걸려온 전화 2통. 극단에 참여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직장인들의 문의였다. 극단 '심심'이 벌써부터 도심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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