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세상으로 통하는 창이다. 우리의 기억속에 온전히 들어앉아 있으나 어느 순간 자리를 잃어버린 세상으로부터 전혀 경험하지 않은 낮선 세상에 이르기까지 책은 무한한 지식과 정보와 넓고 깊은 사유로 우리를 만난다.
그 창을 열어 보이는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이번주부터 '책과 사람'을 격주로 연재한다. 책의 향기와 사람의 향기가 만나는 지점으로부터 또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첫 시집 펴낸 시인 송희 나혜경
그들은 행복했다. 나이 마흔을 여러해 전에 넘겨버린 여자와 이제 막 마흔 줄에 들어선 여자.
금새라도 노란 물감이 묻어날 듯한 책표지의 시집 '탱자나무 가시로 묻다'를 내놓은 송 희(47)와 조금은 뜨악한 느낌으로 다가 왔던 표제의 시집 '무궁화, 너는 좋겠다'를 내놓은 나혜경(40). 그들은 40대 시인이다. 올해초 한달 비낀 앞뒤로 첫 시집을 펴낸 두 시인이 만난 날, 햇빛이 좋았다.
"시요? 삶의 도구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살아가는 중요한 의미중의 하나니까요.”송씨의 단정한 표현에 나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표현을 찾기 쉽지 않지만 내 자신과의 만남, 일종의 성찰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느날 문득 시가 나에게로 왔을 때 그때 비로소 내가 보였거든요.”
두시인은 서로를 바라보는 애정이 각별하다. 함께 문학을 공부해오면서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되어온 여러해 시간의 힘이 둘 사이에 팽팽하게 놓여있기 때문이다.
"지나고보니 등단이라는 절차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시집을 내놓고서야 비로소 시인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지요.”
'압박해 오는 엄청난 고요, 비로소 내가 있다'고 깨달았던 시인(송희)이나 '갈증도 오래 물고 있으니 입속에선 말이 자라던' 시인(나혜경)에게 첫시집의 의미는 컸다. 오랫동안 정신세계에 몰두하여 '나'를 찾는 마음운동을 벌이고 있는 송씨, 간호학을 전공하고 재활특수학교인 자림학교 교사로 16년째 근무하고 있는 나씨에게 시는 삶을 예측할 수 없는 거리로부터 예측할 수 있는 거리로 당겨놓았다.
문학에의 꿈을 한번쯤 품어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마는 철이 들고 부터는 글쓰는 일로부터 멀어져본 적이 없다는 이들은 비슷한 과정(열린시창작회)에서 글쓰기를 시작했고, 비슷한 형식의 등단 과정을 거쳐 시인이 되었지만 문학적 색채는 전혀 다르다.
송희가 '지상적 존재로서 한계를 수용하며 그 극복의 길찾기'에 시적 회로를 놓았다면 나혜경은 '일상적 체험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그 모든 것들'에 생명을 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객관화되어가는 과정같아요. 나를 없애고 대상과 동일화 되어가는 과정. 내 경우는 나와 대상의 간극이 없어졌을 때 비로소 시를 쓸 수 있게 되죠. 당연히 삶에 대한 인식,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어요.”(송희)
"일상적 체험을 정직하게 반영하는 시쓰기로 늘 정직한 삶을 구현하게 되더군요. 작고 사소한 것에 감동을 받는 기쁨도 커졌구요. 살아가는 것의 의미에 눈을 떴다고 할 수 있겠지요.”(나혜경)
같은 동네의 아파트에 살면서 마음 내키면 시간 가리지 않고 만나는 두여자는 주부로 마음공부 운동가(?)로, 교사로, 그리고 시인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을 더없는 기쁨으로 여긴다.
"시를 쓰는 일이란 세상을 다르게 바라 보게 하는 힘입니다. 우리의 기억속에 있거나 혹은 존재하지 않는 것까지에도 눈을 뜨게 하는 힘, 그런 힘을 나눌 수 있는 독자를 갖는다는 것은 또 얼마나 큰 기쁨이겠어요.”
시로 세상을 담아내는 일에 기대어 삶의 희망과 의미를 찾는 행복을 누리고 있는 두시인은 문학에의 꿈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꿈을 버리지 말것을 권한다.
"때가 따로 있지않아요. 가슴에 품은 소망을 실현하는 일은 결국 자신의 문제니까요. 시를 공부하는 과정의 고단함이 어느날 맑게 개인 하늘의 청량함으로 되돌아왔을때의 기쁨을 상상해보세요.” 눈을 마주친 두 시인의 웃음이 넓게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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