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람 이병기 선생의 제자이자 현대시조운동을 전개해온 구름재 박병순 옹(87). 아흔 수를 앞둔 고령이 무색할 정도로 젊은 문인 못지 않게 창작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그가 열한번째 시조집 '먼길바라기'(토우문원)를 펴냈다. 97년 9월 '행복한 날'을 펴낸 후 5년여 만에 상재한 시조집이다.
"지난 5년여 동안 써온 작품 1백50편을 정리했습니다. '행복한 날'이 마지막 시조집이 될 줄 알았는데, 모자라지만 작은 결실을 보게 됐습니다.”
지난 3일 오후 만난 그는 '끈질긴 목숨'덕분에 기쁜 일보다 슬픈 사연을 작품으로 옮기게 됐다고 했다.
삶의 굴곡 촘촘하게 엮여 있는 행복과 불행의 교직을 '물 흐르는 듯'한 운율로 풀어낸 작품에는 망백(望百)이 멀지 않은 그의 연륜과 통찰력이 짙게 배어있다.
가람 선생에 대한 사부곡(師父曲)을 몇 편 실었다는 그는 스승을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문인으로 회고했다.
"천하 영재 양주동도 선생의 진서를 빌어 공부할 정도였고, 학벌·인맥 좋은 도남 조윤제도 '난초는 가람이 귀신이다'고 탄복할 정도로 선생의 기재는 특출났습니다. 우리 문학사에 길이 빛날 가람문단을 이룰 정도 였으니까요.”
그가 가람 선생과 인연을 가진 것은 1·4 후퇴 때부터. 당시 가람이 전주로 내려온 뒤 사제의 연을 맺었다는 그는 " '큰 바보 어른(가람)'과 '작은 바보(구름재)'가 시조로 만나 지금까지 어울려 살았다”면서 지금도 스승을 집에서 아침 저녘으로 모시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도 가람이 붓글씨로 써준 시조 '청매'를 서울 집에 걸어두고 스승과 정담을 나누는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이처럼 한 평생을 오롯이 스승으로 모셨던 그의 스승 사랑과 애잔함은 시조 속에 오롯이 묻어있다. '한손에 책을 들고 고향 가자 외치시네. 폐허 속 움막 치고 굳은 흙 파고 파서, 메라른 땅 궐궈워서 씨뿌려 매고 가꿔 걷우잔다.'('가람 이병기 스승님 동상 제막식'중에서)
생활 속에서 싹튼 작품을 '세종성왕 동상 앞에서'를 비롯해 '설에서 정월 대보름까지''고향 달을 서울서 본다'등 5부에 걸쳐 소개한 그는 "일상 생활에서 느낀 감정을 살아있는 시조의 운율로 표현했다”고 소개했다.
진안 부귀가 고향인 구름재는 52년 우리나라 최초의 시조전문지 '신조(新調)'를 펴내는 등 현대시조운동을 이끈 시조시인. '낙수첩''가을이 짙어가면'등 시조집 11권을 펴냈다. 대구 사범학교를 졸업한 그는 전주고, 진안농고 전라고 교사를 지냈으며 명지대와 인하공전, 중앙대, 한성대 등에서 국어·시조가사론을 가르쳤다.
한국시조시인협회 고문과 한강문우회장으로 활동중인 그의 바람은 '폐부에서 우러난 맑은 소리가 읽는 이의 가슴을 울려주는 작품'을 죽는 날까지 남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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