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해맑은 웃음이 그대로다.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교장선생님!'하며 쫒아 왔다.
'내 친구는 철수고요 바람 친구는 나뭇잎이에요. 내친구는 희야고요 바람 친구는 풀잎이에요. 내 친구는 현이고요 바람 친구는 깃발이에요.-친구'
아이들과 자연이 그에게는 모두 친구였다.
아동문학가 윤이현씨(62, 전주 양지초등학교 교장)가 30년 가까운 문학활동을 결산하는 동시 선집 '내마음속의 가을 하늘'을 펴냈다. 교단에서 마지막 펴내는 동시집이다. 열아홉살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했을 나이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44년. 그는 오는 8월 정년퇴임한다.
"졸업 기념이지요. 그냥 끝내자니 아쉽기도해서…"
이 책은 말하자면 그의 교단 생활을 기념하는 작품집이다. 80년에 펴낸 첫 동시집 '꽃사슴, 그 눈빛 속에는'부터 드문 드문 엮어냈던 여섯권의 동시집을 들추어 골라낸 1백37편의 동시는 어린이들의 심상을 그대로 담아낸 구슬 같은 이야기들이다.
"나는 어른들을 위한 글은 쓰지 않아요. 못쓴다고 하는 것이 옳겠네요. 내 재주가 따로 있으니 그 길로만 열심히 걸어온 것이지요."
어린이들의 눈높이로 사물을 보고 자연을 노래한다는 것이 쉬운 일일까. 그러나 그는 동시를 쓰면서 한번도 그 경계를 넘어가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했다.
첫 동시집을 내면서 '무딘 감각으로 동시를 창작해낸다는 것이 분에 겨운 욕심이라는 것을 알고 퍽 괴로워'했었던 고통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등단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30년 가까운 세월이 놓여있지만 그의 시들이 여전히 맑고 고운 이유는 그쯤해서 확연해진다.
"동시는 그 자체로 아이들의 눈이 되어야해요. 아이들이 스스로 이야기하듯이 친근감을 가질 수 있어야 동시를 자주 만나게 되지요. 꾸밈이나 거짓은 아이들이 먼저 알아요."
영롱한 그의 시상에서 톡 튀어나오는 시어들은 아이들의 언어다. 그 언어는 구슬처럼 엮여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
'주욱 뻗어 있다. 사이좋게 두 줄. 기차는 언제 지나갈까? 끝없이 따라가고 싶다.-철길'
그의 시는 아이들의 친구지만 동심을 잃어버린지 오래인 어른들에게도 아련히 다가오는 그리운 추억이다.
76년 아동문예로 등단한 그의 초기작은 거개가 자연이 대상이지만 근작들은 어린이들의 생활속에 함께 있다.
"아이들의 환경이 바뀌니 자연히 심정적이고 의지적인 이야기를 담게 되었다"는 그는 아무리 아파트와 인터넷 문화가 아이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고해도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순수한 감성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동심으로 세상을 본다면 사회가 어지러울일이 없겠지요. 각박한 사회일수록 동시는 더 필요해요."
워낙 아이들을 좋아해서 가르치는 일을 더없는 행복으로 여겼지만 그의 현장교사 이력은 20년에 그친다. 훨씬 더 긴 세월을 행정직으로만 근무해왔으니 마음속에 담아둔 아쉬움이 없을리 없다.
2년전 양지초등학교에 부임한 이후 아이들의 생각을 열어주는 '엉뚱한 생각' 학습물을 개발한 것도, 매주 월요일 교장선생님 훈화를 '월요작은이야기'로 바꾸어 동화로 아이들을 만나온 것도 아이들에게 채 전하지 못한 사랑의 표현이다.
그는 지난 스승의 날에 가슴 뜨거워지는 상장을 받았다. 5학년 어린이가 '위 선생님은 어린이들에게 충실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모범을 보였으므로' 수여한 상장이란다.
'생애에 가장 큰 선물'을 받았다는 그는 아이들과 작별할 준비를 하고 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나온 양지초등학교 아이들에게는 늘 따뜻했던 윤이현 교장선생님의 '사랑'이 담긴 동시선집 '내마음속의 가을하늘'이 안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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