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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시인의 평양 방문기

 

 

2000년 6월, 분단 사상 처음으로 이루어진 남북한 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온국민은 바로 눈앞에 다가온듯한 통일에의 희망에 들떠있었다. 금강산 육로 관광길이 트이고, 남북을 가르는 철도가 개설되면서 통일의 열망은 더 뜨거워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2003년 8월 지금 남북 관계는 다시 안개속이다. 대내외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정세로만 보자면 6.15 남북공동선언의 화해와 협력 정신은 좀체 회복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분위기를 극복하고 민족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일에 이제 문학인들이 나섰다.

 

전북작가회의가 북측에 제안한 '통일문학연구사업'은 남북화해와 협력 정신을 민간 교류 차원에서 일구어내겠다는 실천의 의지가 담긴 소중한 시도다.       

 

'평화와 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회' 방북단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해 전북작가회의의 제안서를 북측 문학인에게 전달한 안도현시인은 "통일문학사업 제안서를 오영재시인에게 전달하면서 가슴 설레었던 기분이 아직 채 가시지 않았다."며 이제 '시작'은 해놓았지만 갈길이 멀다고 말했다.

 

18일 오전에 만난 안시인은 전날 저녁 전주에 도착했지만 평양방문의 감동을 식기전에 후배들에게 나누어주느라(?) 늦게까지 술자리를 가졌다고 했다. 술자리의 분위기를 짐작할만했지만 그 어느때보다  얼굴이 밝았다.

 

"평양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워낙 북한에 관한 자료들을 많이 접한터여서 낯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의외로 활기가넘쳤어요. 이번 행사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북한은 지금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는 것이 확실했습니다."

 

시인이 북한 땅을 밟은 것은 이번이 다섯번째. 그러나 세차례의 금강산 답사와 두만강의 도문을 통해 한발 들여놓았던 것이 전부여서 평양 방문에 유난히 가슴 설렜다.

 

시인은 자유롭고 활발하게 이야기하고 스스럼없이 사진을 찍는 북측 사람들을 보면서 북한의 변화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문제와 관련해 미국에 대해 강온 양대 전략을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분위기도 북한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았어요. 전해듣기로는 북한 내부에서도 '변해야 산다'는 의식이 확산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8.15 민족대회 본행사에서도 북한은 기존의 관행과는 달리 '미제'라는 용어 대신에 '외세'나 '반통일세력' 정도의 완곡한 표현으로 우리를 놀라게 했어요."

 

이러한 변화는 문학인들과의 만남에서도 그대로 전해졌다. 평양에서의 3박 4일동안 북한 문학인들과의 만남은 두차례 이루어졌다. 북측에서는 시인 오영재 장혜명씨, '청춘송가'로 남한에서도 잘 알려진 소설가 남대현씨가 나왔다.

 

"전북작가회의의 제안서를 받은 오시인은 비교적 자유롭게 북측의 문학 환경을 자세히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아마도 여러 단계의 절차를 거쳐 일이 정리 되겠지만 순수한 민간 차원의 문학 교류인 만큼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전북작가회의가 1차 사업으로 내놓은 백석은 정작 북한에서는 크게 주목 받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고 안씨는 밝혔다. 몇가지 새로운 사실도 확인했다. 백석은 재북작가 중 남한에서 가장 활발하게 연구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작고년도 조차 60년대와 90년대로 갈려 있는 등 북한으로 돌아간 뒤의 행적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백석은 60년대 초까지 평양에서 활동하다가 전원생활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 말년을 보냈다고 하더군요. 작고한 시기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옥구 출신으로 월북한 소설가 이근영에 대해서도 중요한 사실이 확인됐다. 그가 말년까지 활발한 창작활동을 했다는 것, 그리고 83세에 작고했다는 사실이다.

 

북측 문학인들은 안도현시인이 전한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과 어른들을 위한 동화 '증기기관차 미카'를 하루만에 읽고 와서는 '시가 좋고 이해하기 쉽다. 생활의 철학을 담은 시여서 더욱 좋았다'거나 '통일이야기를 매우 감동적으로 그렸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이자리에서 오영재시인은 남쪽의 고은시인에게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했다. 고은 시인을 '시로써 시의 혈맥을 잇자하는  시인'으로 칭송한 오시인은 '앞으로도 6.15의 이념을 실천하는 길에서 좋은 시를 써달라. 건강하시라'는 당부를 부탁했다.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문학으로서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지요"

 

안씨는 평양 방문길에 뜻밖의 즐거운 기억도 안았다. 일전 북경 여행길에서 들렀던 북한 음식점 해당화의 종업원을 다시 평양에서 만난 것. 작은 해프닝으로 시인의 기억속에 남아있던 '은숙 동무'와의 재회는 시인에게 '만남'의 신선한 즐거움이 되었다.

 

"북한 사람들이 호전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쟁보다 평화를 갈망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북한의 사회 변화 중심인 386세대들은 매우 자유롭고 자신들의 한계를 드러내는데도 스스럼이 없었어요. 지금 북한이 변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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