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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달궁가는길-서정인의 문학세계'

 

'카우보이 모자에 권총만 차면 흡사 서부활극에 나오는 멋진 의리의 사나이와 같아 보일 것이다. 파격적으로 자유롭다. 그가 넥타이를 맨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연구실 책장에 술과 마른안주를 상비하고 땅거미가 밀려오면 혼자서도 한두 잔 기울인다…'

 

전북대 철학과 신광철 명예교수가 소개한 '술친구 서정인'이다. 신교수의 글을 통해 작가의 사적영역에 침범할 수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작가에게는 다소 불경스럽지만) 지난 22일 전북대 치대건물에서 만난 그의 인상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설가 서정인(67·본명 서정택·전북대 영문과 명예교수)의 일상과 문학세계를 조명한 '달궁가는길-서정인의 문학세계'(서해문집 펴냄)가 나왔다.

 

당초 그의 정년퇴임에 맞춰 출간할 계획이었지만 다소 늦게 출간된 이 책은 쉽게 읽기 힘든 작가의 작품과 삶에 관한 탁월한 안내서이자 비평집이다.

 

같은 학교의 동료교수이자 마음 터놓고 지내는 후배 이종민교수가 각오하고(?) 앞장서 일을 꾸몄다.

 

이 책은 신교수와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을 비롯해 김만수·김연호·김종욱·김태환·신정현·우찬제·유종호·윤혜경·이경수·임명진·임희종·정호웅·조은하·황종연·정철성 등 문학평론가들이 참여했다. 준비기간만 1년 6개월. 그는 '자신이 더 유명한 사람이었다면 책을 내는데 고생이 덜했을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 '서정인'은 백과사전에 소개되어 있을 정도로 이름이 높다.

 

'개성적인 문체와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소설작법으로 단편소설 미학의 전범을 보여줌으로써 문단의 '스타일리스트' '말과 소리의 리얼리스트'로 평가받는 소설가다'(두산세계대백과사전)

"재직 중에 고생 좀 한 모양입니다. 강의가 없으니까 편안하고 좋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있다고 해서 글이 써지는 것도 아닙디다”

그는 현실을 허구로 평하는 타고난 소설가다. "재주가 없고 게으르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었지만 시속에 영합하지 않는 그의 문학은 독보적이다.

 

'생활에서 얻은 단상'을 소재로 하는 그의 작품은 이야기로서의 소설이 아니라 시적 암시와 여운의 소설 세계로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한다.

 

서울 돈암동 삼선고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68년 창작과비평에 발표한 단편소설이자 그의 첫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강'은 그러한 특징의 백미다. '서정인 소설의 가장 큰 특색은 문체이다. 귀중한 돌을 갈듯이 말 하나하나를 경건하게 다듬는다'는 김현의 평이 닿아있는 소설은 이밖에도 '나주댁''산''후송''물결이 높던 날' 등으로 이어진다.

 

"'강'을 지배하는 우울한 분위기는 그 시대의 심경이예요. 독자들은 그땐 그랬었구나하고 생각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해서 오늘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예요” 2003년, 우리가 그의 작품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다.

 

그의 소설은 '잘 팔리는 책'이 아니다. 글을 쓴 평자들도 '앞으로도 상당기간 그런 상태가 계속되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의 작품은 적어도 행복한 단편소설 쓰기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의지할 만한 하나의 모범'이라는 데에는 한결같이 동의한다.

 

"순전히 인간 서정인에 대한 '흠모의 정'때문에 이 책을 기획했다”는 이종민 교수는 "이 책이 그의 소설에 대한 더욱 심층적 논의의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료 후배 제자들이 마음 합쳐 펴낸 이 책은 서정인 문학의 결산이 아니라 새로운 좌표를 눈앞에 둔 한 탐험가의 도근점이다.

강의시간에 쫓겨(그는 주역 강좌를 듣고 있다) 짧은 인터뷰가 더 짧아지는 순간, 과감히 떨쳐 일어서는 그의 발걸음이 더욱 힘차보였다.

 

"왜 쓰냐고? 글쓰기는 완성이 아니라 끝없는 시도야. 그것은 설명이나 해설이 아니라 탐험이고 방황이지”

서정인의 독자되는 일이 그래도 버거운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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