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2-03 11:22 (화)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전시·공연
일반기사

2004 전북문화 젊음과 희망 - 서양화가 서용인씨

그동안의 작업한 작품들을 사진으로 찍어 정리한 파일을 보여주는 서용인씨. ([email protected])

 

"요즘 거의 삼천도서관으로 출근했어요”

 

하얀 피부에 마른 체구지만, 안경 속의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는 공중에서 맑게 울렸다. 꽉 차 뚱뚱해진 책가방을 옆에 둔 서양화가 서용인씨(35). 그는 "예술과 철학은 직접적으로 연관됐다”는 생각으로 작품마다 철학적 이론을 세우려고 노력한다.

 

정읍에서 태어나 중앙대를 졸업하고 전북민미협과 전북민예총 회원으로 지역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그는 고단한 작업 여정을 스스로 선택한 작가. 이론과 실기를 함께 공부하며 뒤쳐지더라도 탄탄한 역량을 쌓겠다는 그에게서 2004년 전북 미술의 희망을 읽는다.

 

첫 개인전을 가진 것은 대학 2학년때. 격려보다는 '벌써 무슨 개인전이냐'는 곱지 못한 시선들이 따가웠다. 그리고 2004년 3월, 그는 일곱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도서관 출근은 이 전시를 위한 것. 그는 플라톤·헤겔·칸드·들레쥐·장 보드리야드 등 많은 철학가들의 사상을 통해 작품의 컨셉을 먼저 정하고 일정기간 동안 무서울 정도로 작업에 집중한다.

 

서씨의 그런 작업 스타일은 95년 프랑스 파리 유학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합리적이고 학문적 토대를 중요시하는 유럽 미술은 역시 단단했다”고 말하는 그는 단순한 감정 표출이 아닌, 예술 자체를 연구했던 세잔에 몰입했었다. '뭣 모르고' 작업했던 그의 초기 작품들이 이성적·감각적·감성적인 것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면, 파리에서 돌아온 이후 그는 의식과 이성의 표출로 작품방향을 선회했다.

 

그동안의 작업들을 일일이 사진으로 찍어 파일 속에 차곡차곡 정리해 둔 작업 과정을 보면 그가 얼마나 치밀하게 자신의 세계를 가꾸어가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그의 파리 유학은 평탄치 못했던 대학시절 덕분에 이루어졌다. 한 교수가 주변 인맥들로 교수진을 편성하자 수업을 거부하고 교수 퇴진 운동을 주도하고 나서면서 더이상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워졌던 것.

 

"결국 파리 유학을 선택했지만, 그때는 오히려 힘들지 않았어요. 젊고 개혁적이었고 에너지가 넘쳤으니까요.”

 

서씨는 "많은 사람들이 파리를 예술이 저절로 되는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가보니 허상이었다”고 말했다. 길거리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들은 낭만이 아닌 생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그 역시 경제적·문화적 차이 등으로 그들 안에 소속되기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자유롭기는 했지만 많이 외롭고 쓸쓸했던 프랑스 생활의 서씨 작품들은 여러 개의 상들이 화면 안에서 중첩되는 비극적인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 어쨌든 파리에서의 1년은 그의 작품 전환의 계기가 됐다.

 

"제 그림의 힘은 '모방'과 '모사'에서 나왔던 것 같애요.”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친구 작품을 똑같이 따라 그리고 조금 덧칠하고 고친 그의 그림이 그리기대회에서 1등을 한 것이나, 막연히 화가가 되고 싶다고 결심한 중학교 시절, 한문책에 나오는 산수화나 인물화를 화선지에 서예붓으로 옮겨 그렸던 '모방'에의 체험과 열망은 여전히 그에게 고민으로 남아있다. 단순히 베껴 놓는 '모방'이 아닌, 머리 속에서 '나'라는 존재의 의식을 거쳐 다른 공간에 옮겨놓는 작업. 몇 년째 그가 주목하고 있는 '의식의 복사'다.

 

"사고 자체가 철학의 한 행위지만 모든 사람을 철학자라 하지 않는 것은 철학자는 학문적으로 정리하는 전문성을 갖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술 역시 예외는 아니죠. 예술 활동도 모든 것을 학문적으로 체계화시키면 창조성이 오히려 증가합니다.”

 

그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책임감에서 찾는다. 아마추어는 '내가 좋아서 했다' 하면 끝이지만, 프로는 전시를 통해 공공성을 지니기 때문에 이론적 배경 등 작품의 결과에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꼭 한번 해봐야지'했던 작업들이 많았지만, 요즘 그는 "다양한 경험을 섭렵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자연스레 좋은 사고와 좋은 작업의 방향이 설정된다”고 믿는다.

 

이번 전시의 컨셉 '시간의 유희' 는 캔버스위의 유화작업이다. 같은 대상이라도 시간과 환경에 따라 그 이미지가 달라지고, 그 중간에는 자각의 눈이 개입하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같은 것도 달라진다는 것.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시간의 유희'다.

 

작업과 관련해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만이 정답을 알고 있는 어려운 수학문제를 푸는 느낌이다.

 

미술은 주류와 함께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목소리도 다양하게 공존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그는 서두르지 않고 적절한 때를 기다리는 작가다. 그의 3월 개인전이 기대된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