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계가 ‘고구려 찾기’로 분주하다.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대표하는 핵심적 키워드이자, 광활한 대륙의 기상을 대표하는 우리 역사의 뿌리인 ‘고구려’를 찾아 나서야만하는 황당한 상황에 직면에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은 고구려를 자신들의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의도로 기획한 학술프로젝트. 우리나라 역사학계가 분노하여 강경 대책에 나섰지만 상황은 그리 만만치 않다.
전라북도는 고구려 역사의 마지막 숨결이 남아 있는 의미있는 땅. 한국고대사 연구자인 우석대 조법종 교수는 “고구려야 말로 우리 민족과 역사의 뿌리다. 그 역사가 이 지역에서 생명을 다했다는 사실은 또하나의 역사임에도 고구려는 전북과는 무관한 역사로 잊혀져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대책위원회의 중심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교수는 지난 2003년 12월에는 중국을, 올해 2월 말에는 북한을 방문해 고구려 문화 유적을 답사하고 돌아왔다.
조교수의 특별기고로 고구려를 만나본다. 세차례에 걸쳐 연재될 ‘아! 고구려’는 거대한 대륙의 땅 중국은 왜 고구려를 넘보고 있으며, 우리는 왜 고구려를 직시해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전하게 될 것이다.
고구려 , 지켜야할 우리 역사
최근 우리 민족에게 던져진 가장 큰 역사적 화두는 '고구려'다.
고구려는 우리 민족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강인한 민족성의 원형질이랄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중국이 이 소중한 '고구려'가 자신들의 역사이며 우리와는 상관없는 자신들의 종족이라고 강변하고 나섰다. 황당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당연한 우리의 역사이고 우리 조상인 고구려를 우리 역사라고 새삼스럽게 입증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 상황은 곤혹스럽다. 더욱 당황스러운 일은 고구려 귀속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우리 정부나 학계에서조차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있는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하였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사회과학원이라는 국가적 기구에 대응할 만한 조직이나 기구도 없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미약한 연구기반에 의해 손에 꼽을 정도의 연구자가 고구려를 책임져야하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고구려가 한국의 역사임을 증명하라"는 요구에도 “고구려는 당연히 우리 역사”라는 식의 원론적이고 당위론적인 답변만 앞세울 수 있을 뿐 역사적 근거와 체계적인 논리가 부족한 환경. 필자 역시 역사학도의 한사람으로서 깊은 반성과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의 역사교육은 이같은 명제적 질문에 논리적으로 답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고 단지 역사적 단편만을 암기하고 순서대로 구멍 메워가듯 물음에 답하는 소아주의적 교육만을 해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작전 ‘ 동북공정’은 무엇인가.
중국은 2002년 2월 중국사회과학원에서 '동북공정'이란 대규모 학술프로젝트를 진행하여 고구려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는 연구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중국사회 소수민족의 안정과 특히, 동북 3성지역(흑룡강, 길림, 요녕성)의 역사적 연고권 확보가 목적이다. 더 나아가서는 북한정권붕괴시 정치적 간섭의 명분확보와 한국-북한 통일후의 국경선문제, 조선족 귀속문제 등을 미리 대비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 그 내용은 우리 역사에서 고구려를 빼앗아갈 뿐만 아니라 동북고대종족, 고구려, 부여, 발해 등도 모두 중국의 역사라고 하면서 우리 민족의 반만년 역사와 대륙에 걸쳐있는 역사무대를 송두리채 부정하는 것이다. 이 내용대로라면 우리역사는 단군-고조선이 사라지고 삼한시대부터 역사가 시작되어 그 범위가 5000년 역사가 아닌 2000년 역사이며 역사공간 또한 한반도 북부는 중국 땅이고 한반도 중남부 이하만이 우리 역사무대가 되어 우리 역사인식의 영역을 반토막내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은 또 한편으로 북한이 2001년 북한지역의 고구려 벽화고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신청한 사실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북한이 고구려벽화고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하여 등재될 경우 '북한의 고구려유적'이란 내용으로 전세계에 소개되면 '고구려=한국의 역사'로 인식될 것을 우려해 중국은 문화부 차관을 파견하여 중국의 고구려유적을 포함하여 공동신청할 것을 북한에 제의한 바 있다. 이를 북한이 거절하자 중국은 북한의 신청사항을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중국학자를 통해 문제가 있다고 심의를 보류시켜, 결국 등재를 할 수 없게 한 이후에 2002년 2월 '동북공정'을 시작, 중국의 고구려 유적에 대한 대대적 정비를 통해 중국 고구려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하였다. 따라서 보류된 북한의 고구려고분벽화와 중국이 새로 신청한 고구려유적이 2004년 6월 중국 소주에서 동시 심사되어 등재가 논의될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이 알려지면서 온 국민은 지난해 말부터 현재까지 학계, 시민단체, 정부가 힘을 합쳐 적극적인 공동대응을 펼치고 있다. 학계에서는 2002년 11월 17개 학회가 공동으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고 필자를 포함하여 관련교수들이 역할을 분담하여 활동하였다. 이와함께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대국민 홍보 활동과 정부의 신속한 대응으로 중국의 우리 역사왜곡 및 동아시아 전반에 걸친 역사연구 및 정책연구기관으로서 지난 3월 1일 '고구려연구재단'이 출범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고구려사 뿐만 아니라 고조선, 부여, 발해, 중국과의 국경문제, 간도문제 등 한중관계사와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사 전반에 대한 자료수집, 연구를 집중하여 중국, 일본 등의 역사왜곡에 적극 대처할 예정이다.
필자는 대책위 활동을 통해 2003년 12월 말에 중국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대규모 도시 정비를 진행한 집안과 환인지역 그리고 북경의 사회과학원을 방문하여 이들이 진행하고 있는 고구려사 왜곡의 현장을 확인하고 돌아 왔다. 2004년 2월말에는 남북 역사학자 협의회 등의 행사를 위해 5일동안 평양 등지를 방문하여 학술회의를 개최하고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고구려 벽화고분와 관련 유적을 답사했다. 앞으로 두차례 이어질 기획물에서는 중국 속의 고구려와 북한의 고구려를 좀더 생생하게 소개하려 한다.
고구려역사의 마지막 숨결이 머문 곳 전라북도
지금 필자는 우리민족사에서 가장 웅혼했던 고구려를 다시 볼 수 있는 축복과 이를 지켜내야하는(?) 막중한 역할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 고구려의 마지막 역사와 그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전라북도 땅에 살고 있는 때문인지 이 역사적 상황에 참여한 것이 어쩌면 필연일것이라는 소명감도 안게 된다.
고구려가 갑자기 전라북도 땅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전북땅은 고구려 역사와 인연이 깊다. 익산과 전주 남원 일대에는 고구려역사의 마지막 숨결이 남아 있다.
668년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붕괴된 직후 고구려부흥군이 조직되었다. 이중 일부는 나중에 대조영을 중심으로 발해를 건국했고 왕족인 안승과 검모잠이 중심된 고구려부흥군은 백제, 고구려를 붕괴시킨 당나라가 신라마저 복속시키려 하자 신라와 함께 당에 맞서 싸워 당군을 축출하였다. 이 때 신라는 고구려부흥군의 정치적 거점을 현재의 금마에 위치시켜 현재의 금마일대에 수만의 고구려인들이 사민되어 '보덕국'을 세워 고구려역사를 계승하였던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대동여지도나 청구도 등 조선시대 지도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고구려유민들은 결국 이용만 당했다는 것을 깨닫고 684년 신라에 반기를 들었다. 신라는 대규모 병력으로 고구려유민을 진압하고 이듬해 685년 완산주(전주)와 남원소경을 설치하고 새로운 도시건설에 이들을 동원하였다. 따라서 익산-전주-남원에는 붕괴된 고구려유민들의 아픔과 회한의 역사가 깊게 자리하고 있으며 익산의 보덕성, 전주의 경복사, 남원의 만복사 등지에 고구려식 산성, 사찰구조 등의 모습으로 또 남원일대에는 고구려식 음악의 잔영으로 추정되는 남성적 소리인 동편제소리로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남겨 놓고 있다.
전라북도의 사람들은 고구려유민의 귀속처로서 고구려역사와 문화의 마지막을 계승한 땅이란 점에서 새로운 긍지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전북은 우리 역사의 근간을 보듬은 땅으로 새롭게 부각된 고구려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어야 할 땅이다. 중국의 거센 역사전쟁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역량과 책임을 공유해야하는 이유는 이것만으로도 분명해지지 않은가.
조법종(우석대 역사문화관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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