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13편을 보았다. '성적 종속'과 '에로스+ 학살' 등은 제목에 끌렸는데 에로스를 훔쳐보려다 결국 학살만 당하고 물러섰다. 지프카드에 십만 원을 채우고 아는 사람들 여럿 불러서 함께 보았는데 고맙게들 모두 도중에 나가 주었다. 섬닷한 식단 때문일 것이다. 본전생각과 함께 나는 재미만 좇는 인간인가, 자유와 독립은 이렇게 고독한가, 하는 생뚱맞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초기의 불운을 '토킹픽쳐'가 바꾸어놓았다. 90넘으신 감독 올리비에라의 '나의 유럽문화답사기'는 우리는 또 우리나라는 어떻게 존재해야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당최 서둘지 않는 이 포르투칼 영감님의 영화는 베네치아와 아테네, 이스탄불, 카이로를 훑으며 영어 아닌 그 나라 언어로 이야기한다. 미국에 대한 유럽의 한탄과 조롱일 것이다. 아, 그리스 민요는 우리의 자장가처럼 부드럽지 않던가. 마지막에 크루즈 유람선이 갑자기 폭발한 것은 포르투칼이 역사 속에서 어느날 사라진 것에 대한 상징이리라. 정갈한 싱건지를 먹은 것처럼 쌉쓰름했다.
처음 맛본 쿠바 음식. '저개발의 기억'! 행운이었다. 개인의 주체성과 혁명사이의 갈등을 다룬 이 60년대의 걸작은 전주 영화제의 위상에 대한 시사점 그 자체였다. 맞추어 보자. 비주류와 디지털은 혁명을 꿈꾼다. 보름 뒤에 열리는 칸영화제는 부르주아고 지난한 식단을 고집하는 프로그래머가 카스트로의 혁명군이라면, 헤밍웨이를 꿈꾸지만 싸구려 여자들과 놀아나는 하바나의 세르지오는 달콤한 제목만을 좇는 내가 아닌가. 이 영화의 명성을 듣고 교육방송에서 이 카리브해의 보석을 상영한다는데, 나는 보고싶으면 전주 와서 보라, 는 째째한 주문을 하고 싶다. 어떻게 들여온 작품인데 ……
빼놓을 수 없는 산티아고 알바레즈의 다큐, 베레모의 게바라는 쌍꺼풀이 고왔다.동화에나 나오던 당나귀를 타고 시가를 문 채 볼리비아의 고원을 탐색하는 그를 보면서 가슴이 더워졌다. 이어지는 호치민 할아버지가 샌들을 벗고 메콩강에 발을 씻는 모습도. 아, 다큐는 중요한 현장과 순간만을 찍는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화면을 쪼개고 병치하는 꼴라쥬가 이렇듯 역동적인 화면을 만드는구나. 그 날은 술도 좋았다.
영화제 막판에 프로그래머와 대화하는 시간을 통해 그가 얼마나 성실히 작품을 골랐는가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의 방점은 역시 '국제'에 찍혀 있었다. 그러나 전주는 영화제의 멍석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조직위는 '전주'라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컨텍스트에 대한 이해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왜 김용택과 안도현이 전주에 사는지, 그들이 왜 동부시장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지를 깊이 헤아릴 일이다.
역사가 사고방식의 하나이듯 영화 역시 하나의 사유체계라 할 때 폐막작 '노벰버'는 영화제의 정체성에 해답을 제시하는 알뜰한 만찬이었다. 그렇다. 개막작이었어야 했다. 예술이 무엇인가, 또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 마드리드 청년감독의 이야기를 지켜봤다면 궁시렁거리던 서울의 똑똑한 평론가들과 카메라 앞에서 잠시 방긋하던 스타들이 그렇게 쉽게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좋은 영화 한 편은 대학보다 낫다.” 부산 영화제에 가서 본 플래카드이다. 맞다. 겉보다 속이 좋은, 처음보다 끝이 더 좋은 영화제는 대학에서 배우는 몇 권의 책보다 낫다. 웰빙 식단이다. 제 6회는 더 맛깔스런 '가능한 변화'를 기대해 본다.
/신귀백(영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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