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2-03 12:10 (화)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문화일반
일반기사

[문화마주보기]구로사와 아키라 회고전

 

헤세는 깨달음의 소설『싯다르타』를 썼고 베르톨루치는 자금성의 <마지막 황제> 를 제작했다. 대만출신 감독 이안은 19세기 영국을 담은 <센스, 센서빌리티> 를, 새파란 소설가 히라노는 중세 유럽을 담은일식』을 쓰지 않았던가. 이렇듯 동과 서는 서로를 그리워하여 받아들이고 표현한다. 모네가 도자기를 쌌던 포장지에 그려진 일본 목판화(우끼요에; 浮世畵)에 영감을 받고 인상파 시대를 연 것처럼.

 

창포가 고운 5월말, 전주 시네마테크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회고전이 열렸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라쇼몽> 이 서방에 일본영화가 최초로 얻어낸 그랑프리였다는 것을 누가 모르랴. <7인의 사무라이>는 에이젠슈타인 풍의 웅장함, 헐리우드 영화의 빠름을 다 갖춘 고수의 솜씨임을 확인한 바지만, 동안 VTR로도 보지 못했던 세 편의 영화를 보았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이 아니기에.

 

일본 노오(能) 드라마적인 무대와 연기 형식을 빈 <거미집의 성> . 하얗고 긴 얼굴의 여인이 기모노 입은 채 종종거리고 걷는 모습은 우끼요에의 이미지 그대로였다. 그는 동구 작가주의 감독처럼 관객의 인내를 요구하지도 않고 복잡한 방법의 의사소통 아닌 기승전결의 내러티브를 갖는다. 볼 만하다.

 

패전 직후를 다룬 <들개(1949)> 는 숏과 숏이 너무 정교해 리얼리티가 떨어질 정도. 배경음악인 줄 알았는데 부잣집 여인의 피아노 치는 사운드에, 아하 하고 무릎을 쳤다. 클럽 댄서들의 피곤에 절은 다큐적인 화면을 보면서 아버지 세대의 쓸쓸함과 가난을 새기고. 비토리아 데시카가 만든 <움베르토> 의 퀭한 이탈리아 노인의 눈보다 훨씬 재미도 있었고 실감이 났다. 원폭 만화『맨발의 겐』장면들이 씨줄을 이루고 구로사와의 화면이 날줄을 이루어 전쟁전후의 그물망이 한층 촘촘해진 느낌이다. 타인의 생각을 읽는 가치경험의 시간, 행복했다.

 

<숨은 요새의 세 악인> 은 심하게 '비 내리는' 16밀리 화면이었다. 루카스에 의해 <스타워즈> 의 인물 모델로 다시 살아난 것을 보면 '영화의 학교'는 얼마나 적확한 표현인가? 후반부 불꽃 축제 장면은 일본인의 역동적인 춤과 노래를 보여준다. 문학 아닌 영화가 잡을 수 있는 세계인의 공통된 기호로 춤과 노래라 할 때, 우리 영화에 이런 장면이 있을까 싶어 안타까웠다. 그래도 <서편제> 의 진도아리랑 돌담 신만이 춤과 노래가 깃든 원 컷 원 신의 역동성이라는 점에서 임권택의 고독에 존경과 위로를 보낼 이유를 헤아릴 수 있었다.

 

부드러운 바람이 피워 올리는 꽃창포로 천변이 아름답다. 악동 타란티노의 화끈한 영화 <킬빌1> 에서 우마 서먼이 입은 트레이닝복 빛깔. 칸에서 타란티노가 <올드보이> 를 화끈히 띄우고 박찬욱이 감독상까지 받았다는 뉴스가 꽃처럼 반갑다. 존포드와 루카스가 구로사와에게 배우고 박찬욱은 히치콕이 영화의 길에 들어서게 했단다. 동과 서는 이제는 이제 교직을 넘어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펼치는 중이니, 한국영화에도 '싸부' 한 분 나올 때가 되었다.

 

전주 시네마테크는 부잣집 홈씨어터 만하지만 문제는 사이즈가 아니다. 이제 밤꽃이 후끈 피어날 것인데 그 냄새를 잠재울 또 다른 작가의 회고전을 기대한다.

 

/신귀백(영화평론가)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북일보 [email protected]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