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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온라인 고스톱' 광풍

인터넷 고스톱을 즐기는 한 직장인의 손놀림이 빠르다. ([email protected])

 

#2004년 3월 한 업체 사무실의 어느 나른한 오후.

 

"자네, 근무 중에 그런 거 하면 되겠어?”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스트레스 받는 건 아는데 근무시간만은 삼가하게.”

 

#한 달쯤 후 같은 사무실 점심시간.

 

"푹 빠졌구만. 현찰도 오고가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재밌나?” "심심풀이로 '딱'입니다. 과장님! 점당 5천원짜리 어디서 쳐보겠습니까? 광박에 피박에 멍따 그리고 미션(판마다 임의로 제시되는 짝패를 모으면 점수가 배가)까지. 고스톱 한판에 천점 내는 거 일도 아닙니다. 과장님도 한번 해보시죠.” "요즘 인터넷 고스톱 안치는 사람들이 없더만. 좀 복잡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하는 거야?” "그거 말이죠….”

 

#두 달후. "과장님, 언제 그렇게 돈을 많이 모았어요.” "재미가 솔솔하더라구.” "와! 천판을 넘게 치셨네요? 그 정도면 집에서까지 판을 옮겨 고스톱을 치시나보죠?” "근데 와이프 잔소리가 이만저만이 아니더만.” "저랑 한판 붙으시죠?” "그렇게도 할 수도 있나?” "잠시만요…. 과장님? 제가 초대했으니까 '인터넷 창'이 뜨면 바로 클릭하세요.” "어, 그래.”

 

'의자는 책상에 바짝 당겨 앉는다. 상체는 펴고, 15°정도 비스듬히 숙인 채 어깨를 치켜세워 컴퓨터 모니터를 최대한 덮는다. 왼팔 팔꿈치는 책상에 대고 계속되는 손동작으로 주변의 시선을 흐트린다. 이때 모니터에 시선을 집중하는 사이 잠깐잠깐 직장 상사의 눈치를 피해 곁눈질은 한다.'

 

혼자 군실거리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온라인 고스톱 열풍이 지칠 줄 모른다. 컴퓨터가 있는 곳이면 직장이고 집이고 가릴 것 없이 온통 화투판이다. 도처가 '고스톱 바람'에 거대한 도박장을 연상케 한다. '모였다'하면 국방색 모포를 깔고 쪼그려 앉아 화투패를 내리치던 모습도, 이제는 인터넷 고스톱에 밀려 좀처럼 보기드문 광경이 돼버렸다. 직장인들은 왜 온라인 고스톱에 푹 빠져있는 것일까. 하루에 족히 2시간은 인터넷 고스톱에 매달린다는 회사원 김모씨(31·전주시 서신동)는 '잠시 세상 근심 묻어두고 빠져들 수 있어 좋다'고 그 이유로 댔다.

 

인터넷 고스톱의 장점은 고스톱을 쳐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별도의 게임 방법을 터득하지 않고도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가상의 '게임머니'로 점당 10만원짜리라 해도 부담스럽지 않다는 것도 큰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평생 벌어도 못 만져볼 수십억에 달하는 판돈이 오가는 온라인 고스톱은 '월급쟁이 직장인'에게는 대리만족 이상의 기쁨을 안겨주기도 한다. 온라인 고스톱 경력(?) 2년차 회사원 이모씨(34·전주시 인후동)는 점당 2만원짜리 한판에 1∼2억원 잃는 것 쯤은 우습다. "판돈이 크다보니 '오링' 경험도 많아요. 그 때마다 휴대폰으로 사이버 머니를 구해 여러차례 재기를 다짐해왔죠. 평생 만질 수 없는 돈을 온라인상에서나마 갖고 있다는 거, 직장인들에게는 그것도 재미아니겠습니까?"

 

승패를 떠나 '최고 점수'를 경신해나가는 재미. 그는 '독박'을 무릅쓰고도 '고'버튼을 눌러야 직성이 풀리는 '짜릿한 승부사'로 기억되길 원했다.

 

온라인상에서 고스톱 한판 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 안팎. 최근 빨라진 속도에 박진감 넘치는, 둘이서 치는 '맞고'가 큰 인기다. 성질 급한 고스톱 마니아끼리 만나면 1분 안에 내리 2판은 충분히 친다. 속도감 넘치고, 판돈도 커 스릴넘치는 맞고는 직장 상사 눈치에, 와이프 잔소리에 숨죽여 고스톱치던 직장인들에게는 그만큼 '제격'인 셈이다.

 

'효과음'도 재미를 더한다. 고스톱은 서너 명이 돌아가며 담요 위에 내리치는 화투장 소리와 손맛이 제맛이다. 온라인 고스톱이 이를 놓칠리 없다. 화투를 내려칠 때나 '설사', '쪽', '판쓸' 등을 할때면 효과음이 여지없이 터져나온다. 판소리의 추임새처럼 경쾌한 소리에 고스톱 치는 사람은 절로 리듬을 탄다. 게다가 '쭉 가자' '쓰리곱니다' 등 감칠맛 나는 연예인들의 멘트도 재미에 한몫을 한다. 개그맨 김제동, 강호동, 정준하, 배칠수 등 유명 연예인과 성우의 목소리에서 '아따 싸부렀네', '광좀 고마 무라' 등 구수한 사투리가 코믹하게 구사되고 있다. 효과음은 또 온라인 고스톱을 중계하는 게임에까지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들어서는 국가 최고통치자를 패러디한 고스톱이 등장하는 등 온라인 고스톱이 다양한 컨텐츠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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