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사람이 죽었다 / 우리의 기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 의연히 그는 갔다 / 일터에 나가듯 / 냉동실에 누워 그는 웃음을 흘리리라…(‘흰 꽃상여 구름’ 중)’
지난 학기 첫 수업에서 그는 의사가 될 제자들에게 이 시를 읽어줬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없이 지켜봐야 할 어린 제자들이 환자들에게 진심으로 다가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전북대 의과대학 내과학 김대곤 교수(51)는 ‘시를 쓰는 의사선생님’이다. 그는 환자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대화하고, 위로하고, 설득할 수 있는 힘을 문학에서 배울 수 있다고 믿고있다.
“반듯한 외모보다 환자들에게 편안한 인상을 주고싶어요. 그들의 상처를 다 내보일 수 있게 말이죠.”
턱으로 이어지는 흰 수염과 희끗희끗한 머리에 웃음까지 하얗다. 수더분한 외모부터 ‘탈 의사적’이다.
그의 퇴근 시간은 보통 새벽 1·2시. 의사로서 하루를 마치고 나면, 밤 시간은 온전히 시를 쓰는데 보낸다. 책상이며 벽면이며 의학자료들이 빼곡한 연구실이지만, 구석구석 시집이나 문예지들도 심심치 않게 꽂혀있다.
‘금세 / 짚불로 스러져가는 노을을 / 차창에 달고 / 성큼성큼 어둠을 가득진 등짐이 다가올 때 / 등판을 돌려 막차 버스가 서둘러 / 달아났다…(‘설천가는 막차 버스’ 중)’
그가 세상에 처음 내놓은 시다. 미국 유학 동안 향수병이 돋아 습작을 시작했고, 1백20여편의 시를 들고 귀국했다. 전북민족문학협의회 문예창작교실에서 인연을 맺은 섬진강 시인 김용택씨의 발문과 함께 1994년 그는 첫 시집 ‘기다리는 사람에게’를 펴냈다. 그 해 김교수는 청년의사 신춘문예에서 당선작 없는 가작을 수상했고, 95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와 시대문학 신인문학상에 당선됐다.
“의학과 문학은 상호보완적입니다. 인간애가 없으면 간단한 일이지만, 죽음은 일상적인 일이면서도 매번 다가오는 의미가 크거든요. 그래서 자아본질성을 고민하게 되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싶죠.”
“시상은 다름아닌 살면서 느끼는 감정들”이라는 그의 시 속에서 일상에서 만나는 환자들은 비켜갈 수 없다. “촌에서 자라 농촌의 정서가 있다”는 그는 어머니가 굵은 무를 숭숭 썰어 해 준 ‘무시밥’과 ‘황소표 국수’를 먹고도 동생들은 긴 국수가락처럼 쑥쑥 자라난다며 유년의 향수를 건져 올리기도 한다. 시의 근원은 그리움. 그는 객관적인 시각이 살아있는 건조한 시를 쓰는가 하면, 부드러운 정서가 흐르는 서정적인 시를 쓰기도 한다. 섬세하면서도 선이 굵은 시어들이 ‘냉정’과 ‘열정’ 사이의 균형을 맞춰나가고, 양 쪽 모두 휴머니즘을 추구한다.
의과대학 사진동아리 ‘에스프리’ 지도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에서 미술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미술과 사진의 영향 탓인지 김교수는 이미지와 형상, 색채감이 강한 독창적인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세번째 시집 ‘겨울늑대(2001)’의 작품해설을 맡은 김동수 교수(백제예술대)는 그의 시를 가리켜 ‘구도미학’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6월 네번째 시집 ‘야광물고기’를 출간했다. 10년의 세월 속에서 네 권의 시집을 펴낸 김교수는 “유려하지 못하고 거칠없던 문체는 읽기 편할 정도로 다듬어졌고, 리듬을 찾을 수 없었던 시는 이제 조금 말의 흐름을 찾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은 체계와 논리만 다를 뿐 결국 인간을 정점으로 만나게 돼있습니다. 하버드 의과대학은 1970년대부터 문학과 음악, 미술 등이 커리큘럼에 포함됐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 의과대학의 맹점은 인문학 동아리가 없고, 의사들의 창의력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의사들이 환자를 잘 치료하는 방법은 그들을 이해하고 설득하는 것. 김교수는 문학은 사람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고, 문학을 통해 환자와 대화할 수 있는 다양한 화법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문학으로 의학을 실천하고, 의학으로 문학을 다져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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