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가뭄 끝에 비가 내렸다.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해지더니 긴 가뭄을 견뎌낸 전시장에도 회원전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구상미술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전미회부터 젊은 작가들이 만난 SALE까지, 20여년만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마친 전북예술회관이 다섯 개의 회원전을 쏟아냈다.
힘든 창작의 길을 함께 걸어온 동료들이다. 나란히 걸린 작품을 보며 작가들은 창작혼을 이어나갈 수 있는 든든한 힘을, 관람객들은 전북 미술의 흐름을 이끌어가고 있는 작가들의 면면을 만날 수 있다. (26일까지 전북예술회관)
△ 전북의 역사와 풍경-제23회 전미회전
“전북 지역의 작가로서 책임감을 느낀 것이지요. 그동안 작가들의 근작을 선보이는 데 그쳤다면, 올해부터 3년동안은 전북의 역사와 풍경을 담아낼 계획입니다.”
전북예술회관과 얼화랑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는 ‘전북의 그림으로 보는 문화와 얼’전. 라제통문, 향교, 대둔산, 풍남문, 경기전, 한벽루 등 전미회 회원들은 구상회화를 통해 전북의 역사를 기록해 나간다.
전병하·박남재씨 등 일흔을 넘긴 원로작가들이 참여, 그림을 그려온 세월이 성숙된 그림을 완성시키는 구상회화의 깊이를 전한다. 1980년 창립, 전북의 구상화단을 지키고 있는 작가 60명이 참여했다.
△ 교육와 창작활동의 열정- 제11회 호미회전
“창작할 수 있는 시간 마련은 개인에게 달려있지요. 선생님들이 쉼없이 창작하고, 꾸준히 전시를 이어나가는 것부터 학생들에게는 좋은 교육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994년 창립,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호미회는 전라북도 중등교사·교장·장학사 등 현재 교직에서 활동하고 있거나 한동안 몸담았던 이들의 만남이다.
예술도, 교육도 기초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호미회의 활동은 교직자로서 제자와 후배들을 위해 터를 다지는 과정이다.
이번 전시는 올 여름 방학을 이용해 떠난 스케치 여행의 결과물이다.
△ 구상화가들의 탄탄한 맥잇기- 제12회 예인2004전
“같은 길을 걷기 때문에 자주 모일 수 있었어요. 마음도 맞고 생각도 비슷하다보니 그림 분위기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조용히 그러나 흔들림없이 고집스럽게 걸어온 길이다. 구상계열 서양화가들이 모여 예인(藝人)을 이뤘다.
수채화의 투명함과 유화의 힘이 전해지는 예인전은 작가들의 성품처럼 차분한 분위기다. 강남인 강옥철 김재수 이영태 이방우 강성식 조형남 소광석 이정님 노경자 김민숙씨 등 40·50대 중견 작가 11명이 참여했다.
△ 아마추어들의 진지한 세계-제3회 비현(丕顯)전
“숨가쁘게 돌아가는 삶터에서도 붓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꽉 막힌 벽에 그림이라는 마음의 창을 걸어놓은 것이지요.”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무장한 전북대 평생교육원 수료생들이 전시를 열었다. 전문성이 부족할 것이라는 섣부른 판단은 편견. 참여작가 모두 짧게는 5년 길게는 15년 동안 경력을 쌓았다.
정물을 선보인 유신규씨를 제외하고는 16명의 회원 모두 여성. 여성의 시각으로 찾아낸 부드러운 서정성이 잔잔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전해진다.
“제자들과의 인연이 소중하다”는 지도교수 소훈씨도 깊은 사색이 담긴 풍경으로 제자들의 전시에 힘을 실었다.
△ SALE
“자식 같은 아까운 작품들을 너무 쉽게 처분하냐고요? 아닙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붓을 잡을 수 있도록 우리 삶 주변의 것들을 ‘땡처분’하는 것입니다.”
‘작품을 사고 파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젊은이들이 올해는 과감하게 작품 ‘땡처분’에 나섰다. 열한번째 SALE전 ‘땡 처분!!’.
1994년 창립 이후로 반전·부정부패 등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유지해왔던 SALE. 이들이 작품 팔기에 주력한다고 해서 젊은작가들의 변심이라며 안타까워 할 필요는 없다. 작품 판매 목적은 전시 수익금 전액을 사회의 약자들을 위해 내놓기 위해서다. 개성과 끼가 넘치는 작가들이지만 일부러 편안하고 친숙한 소품들을 내놓았다.
“항상 미술의 상업화가 아닌, 미술의 대중화를 꿈꿔왔습니다. 서민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작품과 문화를 소유할 수 있고, 불우이웃도 도울 수 있는 일석이조의 전시입니다.”
기법, 재료, 디스플레이까지 고정관념 깨기에 성공한 이들은 전북대와 전주대, 원광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대학원 재학 이상의 젊은 작가들. 스물두명의 작가들은 자신들의 만남을 ‘조용하지 않고 젊음을 느낄 수 있는 부담 없는 전시’라고 말한다.
한 여름에 구세군 종소리를 울리고 싶어하는 젊은작가들 덕분에 올해는 빨간 냄비가 조금 일찍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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