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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포-사람과 풍경] 원광보건대 협력업체 'PR주얼리' 박상권 대표

"보석가공은 천직" 기능공서 사장까지

기능공부터 시작해 잘나가는 보석가공회사의 사장이 된 PR주얼리 박상권 대표. 작업을 하는 그의 눈빛이 날카롭다. ([email protected])

말부터 급했다.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을 시간도 없으니 빨리 빨리 끝내잖다.

 

익산 귀금속단지 안, 원광보건대 산학협력관에 입주해있는 PR주얼리 박상권대표(34)는 말도 행동도 끊고 맺음이 분명하다. ‘ PR주얼리’는 원광보건대 특성화사업단의 산학협력업체다. 박대표는 이 학교의 동문이기도 하다.

 

“학교도 좋고 우리 회사도 좋고 이것이 산학협력 모델 아니겠습니까.” 귀금속 기능공으로 시작해 지금은 잘나가는(?) 회사의 대표가 된 그는 자수성가한 사업가다. 아직도 귀금속가공을 직접 하고 있으니 기능공의 자격도 유효하다.

 

구례가 고향. 중 3, 꿈이 많은 시절에 그는 자력으로는 고등학교 입학이 어려워 산업체특별학급이 있던 익산기계공고에 진학할 욕심으로 귀금속단지에 들어왔다. 같은 연배의 친구 50명과 함께 였다.

 

“대절 버스타고 왔어요.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낮에는 기술을 배웠고, 야간에 수업을 했죠.” 어린시절부터 무엇이든 만드는 일을 좋아했던 그에게 귀금속 가공기술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훌륭한 기술자가 되고 싶었던 그는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배웠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 귀금속단지는 1만여명 직원들이 일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대부분이 수출을 위한 생산이었다.

 

그는 90년대 말 독립했다. 처음에는 ‘소리공예사’란 이름을 걸고 상품을 내다가 ‘PR주얼리’란 브랜드를 만들어 상표등록한 것이 99년. 그 이듬해 수출이 아닌 내수쪽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수출은 제조업의 의미가 더 커서 양으로 승부를 해야 했지만 내수로 전환하고나서는 품질이 관건이었다.

 

주요 품목은 고가가 아닌 준보석. 합성석보다는 한단계가 높지만 루비나 사파이어, 다이아몬드처럼 고가가 아닌 보석들이다. 그는 디자인의 개념을 도입, 전문적인 디자인을 개발하는 등 브랜드를 내세울 수 있는 독창적인 모델을 개발해냈다.

 

기능만 갖추면 된다는 생각을 바꾸어 뒤늦게 들어간 대학 과정도 큰 도움이 됐다. 큰 업체의 하청업체로 시작한 그의 회사는 지금, 초기 자본 800만원 규모의 영세업체에서 자본금 10억원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다. 일찌감치 내수쪽으로 눈을 돌린 덕분이다.

 

직원만도 15명. 그는 이대로만 가면 100개 지점을 갖춘 프랜차이저 업체로 성장하겠다는 꿈을 실현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선다고 말했다.

 

“어떤 일이든지 즐겁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 일은 저에게 천직이예요.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고해도 제게는 길이 보입니다.”

 

17년전, 함께 익산에 왔던 50명 동료중에서 귀금속단지에 남은 사람은 박대표 한명 뿐이다. 그는 “이만하면 성공한 것 아니냐”며 웃었다.

 

익산시내에 2개의 대리점을 내고 있는 그의 회사 제품들은 인기가 높다. 그의 꿈은 ‘PR주얼리’브랜드를 달고 그의 보석품들이 세계의 명품들과 겨루는 것.

 

“회사 이름 ‘PR’(Point Round)에는 ‘지구의 점이 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 부지런히 뛰어야죠.”

 

인터뷰 시간도 서둘러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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