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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포-사람과 풍경] 임실 호산농장 안재호대표

"화훼농 농한기 없어요"

유리온실에서 장미를 정성껏 돌보고 있는 호산농장 안재호씨. ([email protected])

두툼한 외투에 바람 끼어들까 꽁꽁 두른 머플러가 짐스러워졌다. 온도 20도를 훨씬 웃도는 유리 온실 안. 금새 땀이 났다. 넓디 넓은 온실 안에 꽉 차있는 장미들이 스멀 스멀 더 기온을 높였다.

 

“겨울이면 더 바빠져요. 온도를 맞추어주는 일이 보통 번거롭지 않거든요.”

 

임실군 지사면 호산농장 안재호 대표(52, ‘로즈피아’ 총무이사)는 화훼농장 사람들에게는 농한기가 따로 없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것이 온실 농사는 품목에 따라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온도를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 겨울이면 일주일에 한두차례 이루어지는 병해충 방제 소독에 급강하는 온도를 잡기 위해 보일러를 올리고 내리는 일까지 더해지니 날씨 변화에 오히려 분주해지는 것은 한 겨울 몫이다.

 

아침 일찍부터 이루어지는 장미수확은 거의 매일 이루어진다. 화훼농가들이 어느 하루 마음 편히 쉴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양대표의 장미농장은 3000평 정도. 유리온실과 비닐온실이 각각 절반씩이다. 투자비가 높은 유리온실과 비닐온실이 서로 이어져 있지만 실내온도는 확연히 다르다.

 

그는 당초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복숭아 과수원을 운영했다. 화훼업에 눈을 돌린 것은 96년. 그 전해에 유럽의 화훼농장을 견학하고 온 뒤였다.

 

그는 81년 정부가 지정한 농어민후계자 1세대다. 농업의 대물림을 자긍심으로 삼았지만 갈수록 어려워지는 농업의 현실에 돌파구가 필요했다. 첨단농업에 눈을 뜨게 됐고, 96년 정부 지원을 얻어 유리온실을 지어 장미를 키웠다.

 

수입은 지난해까지만해도 웬만큼 기대치를 얻었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환율 급락과 어려워진 경제사정으로 올해 장미농사는 겨우 현상이라도 유지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양대표는 전했다. 수출에 기대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환율급락이 주는 영향은 예상보다도 크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효자노릇했던 겨울 꽃값도 여름 꽃값과 별 차이 없이 나간다. 올겨울 시름이 더 커진 이유다.

 

“화훼농업은 우리가 일본을 앞섭니다. 긍지는 높으나 수입은 말이 아니니 모순이죠.”

 

그의 농장은 그나마 ‘가족농’으로 운영돼 형편이 조금 나은 편이다. 당초 고정적으로 이 농장에서 일하는 인부는 4명이었으나 뻔하게 보이는 지출을 줄이느라 인부를 2명으로 줄이고 양대표의 어머니와 아내, 아들들까지 모두 농장일에 나섰다.

 

더 딱한 것은 수출 수익성이 떨어졌다고해서 당장 내수로 돌릴 수도 없다는 것.

 

“지난 폭우때 훼리호가 운항을 못해 두차례 장미를 국내시장에 넘긴적이 있어요. 당장 꽃시장의 장미 가격이 폭락하는데 이것 안되겠구나 싶었어요. 소규모 화훼농들의 어려움이 빤히 보였죠.”

 

그러나 양대표는 고통을 겪는 농민들에 비하면 화훼농장의 사정은 나은편이라고 말한다.

 

“농촌붕괴 위기라고 하는데 저는 이미 붕괴됐다고 봅니다. 회복하기 어려운 현실이예요. 농촌의 삶은 정말 비참합니다.”

 

“20마지기 농사짓는 집의 한해 총수입이 천만원도 안된다면 말 다 한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이는 그는 정부가 지금이라도 농업을 살리기 위한 적극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통스럽다는 올해 겨울, 소망을 물었다.

 

“기꺼이 농삿일을 하겠다고 한국농업전문학교를 나와 가업을 이어받은 아들이 자긍심 갖고 농사 지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결국 그의 희망은 끝내 버릴 수 없는 ‘농업’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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