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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포-사람과 풍경] '바퀴달린 고급식당' 전주밥차가 달린다

영화제작현장에 어김없이 등장...스탭들에 푸짐한 '밥심' 선사

전주밥차를 뒤에 두고 부인 최정욱씨가 남편 채수영씨의 팔을 끼고 활짝 웃고 있다. ([email protected])

영화제작현장이 아니어서 오늘은 여유가 있다. 그래도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점심을 배식해야 한다. 촬영스케줄에 맞추지 않아도 되니 조급해하지 않아도 되지만 채수영사장은 습관처럼 일을 몰아간다. 두부 뒤집는 채사장의 손길이 빨라진다는 것은 곧 배식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니나 다를까 40여명 점심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줄을 섰다. 순식간에 밥차가 바빠졌다.

 

지난 15일 낮, 전주정보영상위원회 앞 잔디마당에 야외식당이 차려졌다. 전주영화제조직위 스탭들의 특별한 외식이다.

 

차안에 차려진 부페차림의 만찬에 스탭들은 신났다. 오늘 반찬은 제육볶음과 김치, 잡채, 야채 샐러드, 두부조림, 나물무침에 된장국까지 보기만해도 식욕이 난다. 너나 할것 없이 접시위 반찬들은 수북이 쌓인다.

 

“양껏 충분히 가져다 드세요” 20∼30대 장정들의 밥양은 엄청나다. 부족할까 걱정될 법한데도 채사장은 ‘더 많이 챙기라’고 성화다.

 

밥차일을 돕는 김재완씨(36)는 아예 국물이 식을까 된장국 퍼주는 일에 나섰다. “맛있게 드세요” 한사람 한사람마다 인사를 잊지 않는다. 이쯤되면 고급식당의 서비스도 부럽지 않다.

 

음식 맛은 어떨까. 스탭들에게 물어보니 말대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따뜻한 봄햇빛과 함께 했던 40여명의 야외식사는 단 30여분만에 끝이 났다.

 

스탭들을 맛으로 분위기로 즐거움을 준 주인공은 ‘전주밥차’다.

 

‘전주밥차’에게도 이날 ‘배식’은 특별한 외출이다. ‘전주밥차’는 영화제작현장을 다니는 이른바 바퀴달린 함바식당,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캐터링 서비스’다. 전국적으로 10여개 정도의 밥차가 운영되고 있지만 ‘전주밥차’는 그중에서도 단연 이름이 높다. 대부분의 영세한 밥차들은 시설 투자에도 인색하다. 자연히 서비스가 나아지기 어렵다. ‘전주밥차’가 후발주자이면서도 이 업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떠오른 것도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전략으로 기존 밥차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30대의 젊은 사장 채수영씨의 기발한 아이디어 덕분이다. 여기에 음식 맛있기로 소문난 ‘전주’를 앞세운 것도 단단히 한몫을 했다.

 

2003년 초에 문을 연 ‘전주밥차’는 1년여만에 영화제작현장을 석권했다. 지난해까지 전주밥차가 함께 했던 영화만도 50여편. 올해들어서도 10편에 가까운 영화제작현장을 누비고 다닌다. 대부분의 영화들은 계약을 통해 짧게는 1∼2개월, 길게는 7개월이 넘게 함께 간다. 3년동안 적지 않은 영화현장과 만났던 덕분에 한국영화의 대부분 흥행작들은 ‘전주밥차’의 ‘밥심’을 받았다.

 

한국영화 최대 흥행작이라는 ‘왕의 남자’도 전주밥차가 2개월동안 제작현장을 지켰던 영화. ‘황산벌’ ‘말죽거리 잔혹사’ ‘귀신이 산다’ ‘공공의 적2’ ‘외출’ ‘박수칠때 떠나라’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사랑을 놓치다’ ‘로망스’ ‘음란서생’ 등 ‘전주밥차’를 초대했던 영화는 뒤를 잇는다.

 

영화제작현장에서 밥차의 생명은 시간지키기. 밥차의 품목은 점심과 저녁 야식 서비스. 장기 계약이라하더라도 밥차를 필요로 하는 시간은 일찌감치 정해지기 어렵다. 3∼4일전에 정해지는 것은 그래도 나은 편이고 하루전에도 급작스런 주문이 떨어져 곤혹을 치루는 경우가 허다하다. 제작현장에서의 시간은 돈과 직결되는 문제다. 영화 한편 제작하는데 적게는 50∼60명, 많게는 수백명의 스탭들이 함께 이동해야 하는 현장에서 하루만 지체된다해도 경제적 손실이 크기 때문이다.

 

‘밥차’도 영화제작현장의 ‘시간적 특성’ 때문에 개발된 업종인 셈이다. 밥차의 장점은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현장에서 음식을 만들어 낸다는 것. 단체 도시락 대신 밥차가 환영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끼 식사를 준비하는데는 대략 2시간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대부분의 음식은 미리 준비하지만 익히거나 튀기거나 하는 모든 조리는 현장에서 한다. 그래야만 즉석에서 즐길 수 있는 맛을 그대로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두번 만나고 끝나는 관계가 아니어서 같은 식단을 구성하는 것도 금물. 전주밥차의 경우는 날씨, 스탭들의 연령층, 출신지역 등을 꼼꼼히 점검해 식단을 짠다. 전주밥차가 영화사들로부터 환영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밥차’는 아직 정착되지 않은 ‘미개척분야’다. 캐터링서비스 영역의 확대와 함께 성장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역시 ‘밥차’의 역할이 돋보이는 곳은 영화제작현장이다. ‘밥차’의 미래가 한국영화의 미래와 함께 있는 이유다.

 

 

전주밥차 채수영-최정욱씨 부부의 하루

 

“저렇게 즐거울까요” 밥차안에서 두부 뒤집기에 바쁜 남편을 보며 아내가 말했다. 아내는 번듯한 인물치레에 능력까지 확실하게 갖춘 남편이 고작 1t 트럭 안에서 두부요리 만들며 즐거워하고 있는 모습이 심란한 모양이다.

 

“그래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도 행복이겠죠.” 이번엔 자문자답(自問自答)이다.

 

전주밥차를 운영하는 채수영(37)·최정욱(35) 부부. 엄밀히 말하자면 남편이 사장이고 아내는 주방장이다.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밥차일이 마뜩치 않은 아내에게는 ‘주방장’이란 별칭이 언짢겠지만 어쨌든 전주밥차는 아내 최씨의 요리솜씨로 더 이름을 날리고 있다.

 

“아내가 합류한 것은 얼마되지 않아요. 호텔식당, 고급레스토랑 등에서 실력 인정받은 요리사들을 채용하기도 했었는데 오래 견디지 못했어요”

 

아내의 도움은 예상보다도 큰 힘이 됐다.

 

“영화사에서 섭외가 들어오면 아내는 먼저 스탭들의 나이, 여자가 많은지 남자가 많은지를 먼저 물었어요. 여건에 맞게 식단을 짜기 위해서죠.” 채사장은 아내 최씨가 자신보다도 ‘한수 위’였다고 말했다.

 

캠퍼스(백제대 연극영화과) 커플인 부부는 시나리오 작가와 배우를 꿈꾸던 시절에 만났다. 채씨는 일찌감치부터 자신의 사업체를 갖고 있었다. 99년 기획사 ‘보린 프로덕션’을 설립해서도 썩 괜찮은 능력을 발휘했다. 그런 남편이 어느날 갑자기 ‘밥차’를 들고 나섰다. 아내과 집안의 반대는 만만치 않았다. 채사장의 어머니는 “어렸을때부터 별나더니 끝내는 설겆이통에 손넣으냐”며 속상해하셨다.

 

그러나 채사장은 보람과 성공 가능성을 확신한다. 실제로 그는 일했던 후배들과 밥차 두대를 독립시켰다. 이른바 체인망이다. 모든 노하우는 채사장이 제공한다. 그의 꿈도 전주밥차의 ‘프랜차이즈’를 이루어내는 일이다.

 

‘천군’이 제작된 중국에까지 진출했던 채사장의 소망은 밥차를 통해 ‘전주’의 아름다운 가치를 실현해보이는 일. 결코 녹록치 않은 밥차일이 즐겁기만하다는 그가 해결해야 할 과제를 살짝 들려주었다. 아내의 ‘적극적인 지원’이란다. 그 말을 듣기라도 했는지 아내가 남편의 팔을 끼고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이미 과제는 해결된 셈이 아닌가. 봄햇살이 부부 얼굴위로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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