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마중 여기로 오세요
아! 이맘 때쯤이라고 들었다. 혹시나 해서 전화를 걸었다.
“요즘 철쭉철이 아니던가요?”
“제때 전화하셨네요. 서나흘 후면 ‘꽃대궐’이죠. 근데 날씨가 추워서 개화시기가 좀 늦어질 수 있겠는데요.”
지난해 일이다.
이미 꽃이 지고나서야 우연히 알게 된 전주 근교에 위치한 ‘미지의 철쭉 동산’. 상상만으로도 꽃내음이 물씬 풍기는 이 곳에 꼭 한번 다시 찾겠노라고 다짐했었다. 반복되는 일상에 하마터면 제철을 놓쳐 1년 후를 또 기약할 뻔했던 나에게 불현 듯 떠오른 붉은 빛 철쭉이 마냥 고맙기만 하다.
전주에서 진안 방면으로 가는 길, 천주교 공원묘지를 막 지나면 우측으로 약 700m 전방 산자락 아래 ‘금상마을’이 내려다보인다. 행정 구역상 전주시 덕진구 금상동이지만, 완주군 용진면 금상마을로 더 알려져 있다.
발꿈치만 조금 들어도 언덕 넘어 고층아파트가 훤히 보일 것만 같은 도심에 인접해 있지만, 마을 정면 쪽으로 길다랗게 뻗은 4차선 신작로를 빼고나면 뒷산과 논밭, 구릉, 과수원으로 둘러쌓인, 영락없는 시골 풍경이다.
여느 농촌처럼 한적한 마을, 그러나 그 안에는 ‘꿈의 정원’이 비밀스럽게 숨어 있다. 동네 주민과 입소문을 탄 몇몇 외지인 말고는 좀처럼 발길이 닿지 않는 곳. 7∼8천평에 이르는 이씨네 종산에 가꿔진 낙원은 온통 ‘철쭉 세상’이다. 매년 4월 24일이 D-day. 양지 바른 곳에서 서둘러 기지개를 편 철쭉은 이미 꽃망울도 터뜨렸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개화시기가 다소 늦어질 것이라는 전망이지만, 예년대로라면 이곳 철쭉은 다음주가 절정이다. 꽃이 피고 만발하고 지기까지의 기간은 보름 남짓. 가족이나 연인, 직장 동료끼리 나들이하기로는 제격인 장소다.
철쭉의 화사한 몸짓 사이로 사방으로 뻗어난 오솔길은 호젓한 산책을 즐기기에 그만. 곳곳에는 아름드리 소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폐타이어로 만든 그네 등 쉼터도 잘 갖춰져 있다. 내방객들을 위한 배려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랬다. 바깥 나들이에 음식이 빠질 수 있을까. 동산 도처에는 방문객들이 챙겨온 음식도 요리하고, 인기 메뉴인 ‘삼겹살’도 구워 먹을 수 있는 취사시설도 마련돼 있다. 철쭉 동산 주인의 후한 인심에 미처 준비하지 못한 상추나 고추 등 야채는 현장에서 바로 공수받을 수도 있다.
입장료나 예약도 따로 필요없는 곳. 자연을 사랑하고 만끽하고 싶다면 누구든 환영이다.
20년째 철쭉동산 가꿔온 이한열씨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철쭉세상 만들고 싶어요"
4대째 금상마을을 지켜오면서 올해로 꼭 20년째 철쭉 동산을 가꿔온 이한열씨(43). 8톤 덤프차량을 운전하고 있는 완산구청 도로교통과 소속 기능직 공무원이기도 하다.
취미삼아 한 그루 두 그루 철쭉을 심은 마을 뒷편 종산은 어느 새 ‘철쭉 동산’으로 바뀌었다.
아랫 마을 이씨 집에서 언덕을 넘어 철쭉 동산까지는 500m 거리.
마을 입구에서 골목길을 따라 태조 이성계의 넷째 아들인 회안대군 이방간의 묘를 지나 300m를 오르다보면 이곳에 다다른다.
“뭇사람들에게 철쭉은 하찮은 나무로 통하죠. 하지만 저에게는 신비로움으로 가득찬 오묘한 나무입니다. 형태를 잡기 쉬워 얼마든지 원하는 모양을 낼 수 있으니까요.”
이곳 철쭉은 매년 4월 24일을 전후해 꽃망울을 터뜨린다. 1년 365일 중 개화시기는 20일 채 안되는 짧은 기간이지만, 전지가위와 칼이 든 작업복 차림으로 매일같이 동산을 오르내리며 철쭉 가꾸기에 정성을 쏟는 그에게는 꿈이 있다. 철쭉 동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행복과 기쁨을 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95년 전주시 기능직 공무원이 된 그의 기쁨도 잠시. 직장 생활에 충실하면서도 일찌감치 ‘정년’을 고민해야했던 그는 일과 시간을 빼고는 철쭉 동산 가꾸기에 전념해왔다.
“아직 외부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철쭉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처음에는 친지들이나 직장 동료들이 알음알음 찾아왔지만 지금은 낯익은 손님들도 많이 늘었죠.”
이씨가 아끼던 철쭉 동산을 개방한 지 올해로 벌써 8년. 나들이객들을 위한 소박한 편의시설도 갖춰져 있고, 아이들이 맘놓고 뛰어들 수 있게 잘 다듬어진 오솔길에는 벤치도 놓여있고, 나무에는 그네도 매달아놓았다.
“가족의 화목한 모습만 봐도 보람을 느껴요. 손님들을 치르고 나면 허드렛일도 생기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즐거워하는 손님들을 보면 철쭉 동산을 가꿔놓은 것이 자랑스러워요.”
이씨네 인심은 푸지다. 이씨가 손수 재배한 ‘유기농 상추’는 늘 손님들 몫이고, 밥이 부족하면 손수 지어 주는 것도 이젠 예사다.
“일거리가 늘거나 금전적인 것을 따졌다면 애초부터 개방하지도 않았죠. 이것 저것 계산하면, 아무것도 나눌 수가 없잖아요.”
씨를 파종하거나 어린 묘목을 관리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이씨의 집 마당은 철쭉 동산의 ‘임업연구소’나 다름없다. 이 곳에는 금당화, 매발톱꽃, 은초롱꽃 등 꽃나무만 100여종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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