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부터 17일까지 우진문화공간
다른 작가와 유사하다는 것은 대개 자존심 강한 작가들에게 치욕적이다. 멕시코의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와 비슷한 느낌의 그림들. 그러나 그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프리다 칼로에게 심장과 눈물은 아픔의 상징적 표현이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자들의 삶은 비슷한 것 같아요. 가장 아픈 것이 마음인데, 심장을 빼고 그린다는 건 의미가 없었죠.”
마음이 자라지 않는 열두살 아이. 서울서 주목받던 작가는 자폐아인 하누리의 엄마로만 12년을 살았다.
유미옥씨(45)가 4일부터 17일까지 우진문화공간에서 ‘열두해의 그림일기’를 연다. 파리 유학시절 첫 개인전 이후 꼭 20년만의 외출이다.
“‘특수’자가 붙어있는 온갖 교육시설을 찾아다니던 때가 있었죠. 가족 모두 지쳐갈 때 쯤, 기약 없는 특수교육을 접고 변산반도 부안에 내려와 자연 속에 파묻혀 버렸어요.”
쫙쫙 갈라진 논바닥 같던 마음에 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2년 전 문득 내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었고, 내 인생에 한 매듭하고 간다는 생각으로 전시를 결심했다.
“욕심이 많던 젊은 날에는 사람들에게 내 작품을 빨리 보여주고 어떤 반응이든 얻고 싶었어요. 그러나 전시는 얻는 게 아니라 나를 버리는 거라는 걸 이제서야 깨닫게 됐네요.”
그림이 삶이었던 그는 그림을 통해 자신을 치유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엄마의 입과 뱃 속 아이의 탯줄이 연결돼 있거나 엄마의 몸에 아이의 얼굴이 붙어있거나, 아이와의 감정을 캔버스에 옮긴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동양화를 전공한 그가 서양기법을 쓰게 된 것은 유학 시절 부터. 아이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던 그에게 한동안 몰입해야 하는 동양화 보다는 틈새를 이용할 수 있는 서양화가 더 맞았다. 감각적인 표현이나 테크닉은 일부러 자제했다. 단순한 묘사와 간결한 선, 존재를 더욱 작게 만드는 여백에서 동양화가 느껴지기도 한다.
공허하던 아이의 눈빛을 조금씩 채워나가며 자신도 인생을 알아가고 있다는 유씨. “나와 아들이 가장 힘겨운 주제인 만큼 아직도 풀어내고 싶은 게 많다”는 그는 그러나 작가로서의 꿈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꿈은 아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 하누리에게 더없이 훌륭한 아빠인 최효준 전북도립미술관장과 기특하게도 의젓하게 자라난 딸 하예리도 그의 행복한 꿈에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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