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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귀향인사들을 객원교사로 - 윤승용

윤승용(국방홍보원장)

지금부터 30여 년 전의 일이다. 고답적 문투를 빌자면 ‘청운(靑雲)의 꿈’을 안고 막 고등학교에 입학했던 그해 3월 어느날이었다.

 

필자의 담임은 역사를 가르치던 공의창 선생님이셨다. 역사학도여서 그랬을까? 공 선생님은 ‘서울대 입학’만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야심만만한 신입생들에게 정작 공부를 그다지 채근하지 않았다. 대신 공 선생님은 “젊은 시절엔 동서양의 고전을 많이 읽어야한다”며 ‘플루타르크 영웅전’이나 시저의 ‘갈리아전쟁기’ 등 도서목록까지 구체적으로 추천해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공 선생님의 이러한 교육방침에 일부 학생들은 “담임 선생 잘못 만났다”며 은근히 불만을 드러내곤 했다.

 

대학 다니는 형이나 누나가 있던 상당수 도회지 출신 친구들은 이미 고입시험이 끝난 후 2달여 동안 당시 유행하던 ‘정통기본영어’나 ‘기본수학의 정석’을 떼고 입학한 터였다. 그러니 좋은 대학에 가기위해선 1학년때는 어떤 참고서를 봐야하고 2학년때는 뭘 독파해야하는 지 등을 잘 일러주는 소위 ‘일류 학습 컨설턴트’를 원하던 범생이들한테야 “공자왈 맹자왈”하는 공 선생님이 영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필자를 비롯한 삐딱이들은 동서양의 각종 전사(戰史)를 예로 들며 재미있게 가르치는 공 선생님이 그리 멋있게 보일 수 없었다. 그 중에서도 아직까지 기억나는 몇 구절이 있다. “1학년때는 성적에 신경쓰지 말고 무조건 많은 책을 읽어라”“역사속에 진리가 있다. 역사교과서가 아닌 진짜 사서(史書)를 읽어라”“훗날 어떤 사람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살았는가가 더 중요하다”

 

이미 현역에서 은퇴하셨지만 공 선생님의 영향이 컸던 탓일까. 당시 유난히 공 선생님으로부터 역사를 배운 우리 또래들은 대부분 유신시대의 대학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험난한 학창생활을 영위해야했다.

 

필자가 굳이 오래전 고교시절을 돌이키는 이유는 사연이 있다. 요즘 이런 저런 모임에 가면 “은퇴후엔 고향에 가서 살고 싶다”는 선배나 친구들을 자주 보게 된다. 이른바 ‘귀향선언’인 셈이다. 그런데 이들의 귀향을 가로막는 요인이 하나 있는 데 바로 “고향에서 뭘 하고 지낼까”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이 귀향인사들을 초중고교의 교사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싶다.

 

귀향인들의 경우 제각기 자기가 속한 분야, 이를테면 언론인은 시사를 활용한 논술교육, 사업가는 일반사회학 등 나름대로 인생의 경험에 바탕한 좋은 스승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교사자격증이 없으므로 정교사로 채용하긴 어렵겠지만 요즘 대학의 객원교수, 겸임교수 제도 등을 벤치마킹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전국에서 전북이 맨 처음 귀향인사들을 산골초등학교의 객원교사 또는 농촌마을의 겸임교사로 활용하는데 앞장서줬으면 좋겠다.

 

최규호 교육감과 김완주지사의 관심을 기대한다. 어린 시절에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처럼 인생에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윤승용(국방홍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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