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연변 연길시 시대광장 울려댄 임실필봉농악
임실필봉농악보존회와 전주의 예술인들이 지난 2일부터 7일까지 중국 공연을 다녀왔습니다. 연길시와 용정시의 작은마을 세린하에서 열린 이번 공연은 조국을 그리워 하며 살고있는 중국 동포들에게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주는 계기였습니다.
본보 박예분 객원기자가 중국공연을 동행 취재했습니다. 뜨거웠던 공연현장, 조선족들의 삶을 담은 르포를 2회에 걸쳐 담습니다.
사투리가 강한 어느 지방에 온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만큼 모든 것이 낮설지 않았다. 중국 땅에 사는 한민족의 혈통을 가진 조선족을 만난 반가움은 기대보다도 컸다.
지난 2일부터 7일까지 중국 연길과 용정에서 열린 임실필봉농악보존회와 전주의 예술인들의 중국공연은 즐거움을 넘어 큰 보람으로 다가왔다.
연변은 조선족이 집중 거주하는 곳. 조선족자치주의 주도(州都)이자 조선족 문화의 중심지다. 특히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후 많은 조선인들이 이주하여 황무지를 개척했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독립운동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여러 해 동안 임실필봉농악보존회(국가 중요무형 문화제 제 11-마호)가 이곳을 찾아오는 이유는 한결같다. 중국에 사는 우리 동포들에게 조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주고, 조선인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올해는 사)열린문화와 함께 용정의 아주 작은 마을까지 찾아가 신명나는 판굿을 벌였다.
연길시 시대광장에서 열린 첫공연은 연길시 예술단 소속 단원인 김 청씨의 사회로 진행됐다. 중국 측은 한·중 수교 15주년을 맞아 이런 행사를 갖게 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합동공연에 맞게 연길시 예술단 단원들은 부채춤과 여성 독창으로 무대를 빛냈다.
관객 중에는 한족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팔짱을 끼고 무덤덤하게 서 있기도 했지만 더러는 설장구의 굿거리장단에 손뼉을 치면서 신명을 나눴다. 가사 전달이 안되는 판소리에 답답해하면서도 고운 한복에 관심을 갖거나 발림과 고수의 추임새에 눈을 반짝였다.
젊은 관객들의 눈과 귀를 빼앗은 것은 단연 빠른 장단의 사물놀이였다.
연변 아리랑 라디오 방송국은 공연을 생방송으로 중계했고, 연변 TV 방송에서도 출연자들을 인터뷰하는 등 이 공연은 연변의 큰 화제거리가 되었다.
전주의 공연단측은 풍물놀이 뿐만 아니라 음악교류지도를 위해 작곡가 지성호씨, 성악가 고은영·조창배씨가 참여했다. 오페라 아리아와 이중창을 부른 두명 성악가들은 관객들에게 앙코르를 받기도 했다.
공연의 절정은 역시 뒷풀이 마당에서 이루어졌다.
판굿이 시작되자 앉았던 누가 먼저랄 것 도 없이 관객들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상쇠가 신명나게 꽹과리를 치며 상모꾼을 이끌자 징, 장구, 북, 소고가 줄을 지어 따르고 판의 흥을 돋우는 잡색이 등장했다. 긴 총을 멘 대포수, 색동두루마기에 안경을 쓴 화동, 상고머리에 댕기를 두른 각시가 익살스럽게 재량을 펼치고 관객들은 흥겨움을 나누었다.
딸을 한국에 유학(조선대 4) 보냈다는 조선족 구봉림씨(여·46)는 “이런 공연을 보게 되어서 너무 기쁘고 반갑다”며 중국과 한국의 5천년 역사를 반영한 좋은 공연이었다고 말했다.
장철훈씨(50·연길시 문화관 관장)는 공연단이 입은 옷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색조가 선명하고 정서가 좋다. 사물놀이는 우리의 옛 것을 현대적인 수법에 도입한 점이 돋보인다”며 내년에도 오게 되면 ‘열렬히 환영’할 것이라고 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이 모씨(50)는 “시대광장이 생긴 후로 이렇게 광범한 무대는 처음이다. 지금까지는 민간차원의 작은 행사만 있었는데, 시대광장에서 정부의 협조를 얻은 공식적인 행사는 처음이다”며 기분이 좋고 조선인에 대한 자긍심도 생긴다고 전했다.
“풍물은 이곳 현 세대들에게 익숙하지 않아 지루한 감이 있으니, 전통무용(율동)이나 흘러간 옛 노래,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가요도 구성해 한족도 함께 호흡할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그리운 조국의 전통음악에 열광하는 동포들, 한국의 풍물에 관심을 보이는 한족들, 그들 모두가 이날 신명난 한판에서 하나가 되었다.
행사를 준지한 열린문화 김영배상임이사(김제자활후견기관 관장)는 “문화 소외지역에 사는 우리 동포들에게 전통문화를 알리는 동시에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은 것이 가장 큰 바람이었다”며 “기대이상의 환영과 호응에 앞으로 해야할 일이 더 많다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했다”고 말했다.
연길에서의 성공적인 공연은 그렇게 끝났지만 우리 앞에는 용정의 작은 마을 ‘세린하’ 공연이 또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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