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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화의 발견] (1)고창 미당 시문학관

산 바다 그리고 가득한 詩 천국

왕의 무덤,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흥덕서부터는 새길이 뚫려 우리는 양명한 기운이 넘치는 소요사 가는 옛길을 놓치고 장어집 즐비한 선운사 앞길도 그냥 지나친다. '눈물처럼 동백꽃 후두둑 지는 그곳'은 노랫말로 대신했다. 풍천장어가 난다는 작은 천을 오른쪽으로 돌아 미당시문학관 앞에 차를 멈춘다. 문학관은 폐교가 된 기와지붕 교실 몇 칸을 좌우익으로 거느린 노출 콘크리트 스타일이다. 광화문 처마선을 닮지 않은 직선 공간에 갇힌 미당께서 답답하다고 하지나 않으실까.

 

미당의 작은 체구와 달리 그의 사후 공간은 너무 헐렁하다. 냉방이 전혀 안 되는 전시실 벽에는 미당이 갈고 닦은 시편들이 초등학교 시화전처럼 똑 같은 액자에 굵은 신명조 30포인트 프린터 글씨체로 걸려있다. 미당이 생전에 입던 의상과 유물들 역시 어떤 테마가 없이 산재한 느낌. '또 하나의 정부'를 이루던 그의 유품들은 파천(播遷)에서 돌아온 정부의 유물이 아닌 아직도 임시정부 그대로라니. 그는 조그만 부족장이 아닌데……, 왕의 무덤을 들여다보는 내밀함이 없다.

 

우리는 그의 손때 묻은 유품들 속에서 <화사집> 에 나오는 그 징그러운 절망 가득한 열정이나 <귀촉도> 가 보여주던 유현함의 한 끝을 붙잡고 싶었다. 그런데, 권태로운 디스플레이. 탁월한 선곡은 조금 허름한 음악실도 귀한 자리를 만드는 법인데, 분명 비전문가의 솜씨다. 우리에게 미당은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이 아닌, 천 번을 외워 기슭에라도 다가서고 싶은 산인데 말이다.

 

 

응집력이 부족한 디스플레이

 

전시실 왼쪽 방 한 켠은 영욕의 공간이다. 말당 시대에 쓴 '제너럴 전'에 대한 송시와 가미가제 소년병을 위한 시가 붙어있다. 아프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행스럽다. 예술은 쾌락이 도덕성을 갖추고 승화된 것이라고 배웠는데, 어쩔거나. 안내를 하시는 미당의 애제자였던 김정웅(시인, 문화해설사)선생은 서운한 모습. 이 시들을 당장 치우라는 사람이 많단다. 아니라고, 이 액자 일곱 편을 치운다고 미당의 시적 업적이 각개격파 당하지 않는다고 선생을 달랬다. 선수들끼리의 공격적인 유머를 가진 안내를 바랐는데, 우리는 이미 너그러워질 준비를 하고 온 사람들인데, 미당과 말당 사이에는 해설만 있다.

 

2층에도 '미당 사단'이라 할 유품은 많았다. 16권의 초간 시집들과 사단장의 시를 연구한 장교들의 논문집에서 훈장까지. 아내와 아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그의 따뜻한 글씨는 서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한참 바래가고 있었다. 선생이 애용하시던 보오타이, 도리구찌와 베레모, 지팡이와 많은 파이프들을 보고서 우리는 그의 시가 주던 역동성을 느끼기 어려웠다. 말년에 기억력 강화를 위해 일일이 외우던 해외의 많은 영봉들의 사진은 그의 시와 겉돈다. 쇼핑 공간의 알뜰함에 길들여진 우리 눈에 이 전시공간은 권태로운 점빵 스타일이다.

 

우리는 단순히 과거회귀를 위해 이 문학관을 찾은 것은 아니다. 관능적 아름다움과 설움, 불안하면서도 역동적인 이미지와 시적 정부가 갖는 실체의 결합을 보러 온 것.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을 내뿜던 징글징글한 열망은 마티스 같은 현대적이면서도 원시적 색감을 가진 닫힌 방이 어울릴 텐데. 아니면, 모나미 153볼펜처럼 아예 단정하거나. 유리에 담긴 보료 깔린 미당의 작업공간은 그를 한가한 부르주아에 머무르게 하고 만다. 당신의 고독과 열정을 수렴하려면 그의 유품들을 압축해야 하고 컨셉에 맞게 재배치해야 하는데……. 전문가가 필요하다.

 

 

문제는 사람이다

 

선풍기도 잘 돌아가지 않는 사무실에는 거북이 컴퓨터 한 대로 문학관의 홈피를 띠우고 있었다. 문광부와 군청의 예산은 어디다 쓰는지 에어컨도 없다. 남자직원 한분이 티백으로 된 국화차를 내어온다. 매년 11월 3일에는 시문학 축제가 벌어지는데 국화축제와 함께 백일장도 하고 시낭송회도 한다고. 이 널찍한 공간들이 문학반 아이들을 위한 캠프장이 되면 좋을 텐데.

 

문학관 옆 미당 생가. 지푸라기로 단장한 생가엔 <자화상> 의 시처럼 작은 대추나무 한 주가 서있을 뿐. 마루엔 소실댁의 놋요강도 묶어놓은 깻대도 없다. 떫은 물이 들 감나무나 맨드라미도 타래박도 심어지지 않은 생가를 왜 복원해 놓았을까. 생가를 나오니 정면에 보이는 인현마을이 울긋불긋하다. 이곳에 사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지붕과 담에 국화꽃과 주민들의 얼굴을 그려 넣는 작업을 했단다. 주민들의 얼굴은 민중화가 이종구 선생이 그린 얼굴에서 보여주던 고단함은 쏙 빠진 모습에 국화꽃에는 밝음만 가득 차 있었다. 시인의 세계가 오로지 국화꽃에 한정되는 느낌. 생가복원과 마을가꾸기, 결국 돈이 쓰임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 아닐까.

 

미술관이나 문학관에 가면 작품을 통해 우리는 힘을 얻는다. 문학관은 단순한 물품의 저장창고가 아닌 전략의 소산으로 감상하는 이의 예지와 전시하는 이의 내공이 힘겨루기를 하는 전쟁터이어야 한다. 하여 새로운 영감을 생성해 내는 공간이어야 하는 것. 그러나 이 시적 정부의 왕궁은 보는 사람을 방심하게 한다. 그리고 막판까지 반전이 없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사람이다. '어느 가시덤불 쑥굴헝에 뉘일지라도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하는' 이 질마재 언덕에서 먹고 자고 일할 배짱 있는 젊은 시인 한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수단과 목적을 구분하고 문제해결능력이 강한 큐레이터가 있어야 할 것. 최고의 시편들, 산과 바다가 지척인 수려한 풍광 등 이만한 문학관이 또 어디 있을 것인가. 미당시문학관, 새로 시작하여야 한다.

 

(문학관 전화 063-560-2760)

 

/신귀백(문화전문객원기자.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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