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아이들 돌보며 오히려 제가 더 배워요"
“생각해보면 알게 모르게 받아온 게 많은데 부족한 것만 생각할 줄 알았지 가진 것을 나눌 생각은 못했어요. 지금은 소외된 아이들과 함께하며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앞으로는 교도소에 있는 사형수의 벗이 될 생각입니다.”
한 때는 조그만 사업도 하며 ‘사장님’ 소리 꽤나 들었다는 고금옥씨(61·전주시 효자동)는 가정보육사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지만 ‘선생님’이라는 말에 한없는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젊어서 남편과 사별한 뒤 4형제를 키웠지만 그리 큰 고생은 하지 않았다는 고씨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지난 2001년. 상가건물에 입주해 장사를 하던 중 건물주가 부도를 내면서 억대의 보증금을 날렸다. 연대보증을 섰던 아들들마저 월급에 가압류가 들어가는 등 자신 때문에 아들들이 괜한 고생을 한다는 생각에 지독한 맘고생을 했다. 밀려드는 빚 독촉 전화와 방문에 시달리던 고씨는 이때부터 봉사활동에 나섰다. 불안한 마음에 집에 있을 수 없었고 막상 나와도 딱히 할 게 없어 ‘착한 일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봉사활동을 했다고 한다.
2005년에는 도내 여성가장들의 모임인 미모사(미래를 꿈꾸며 모인 사람들)에 가입했고 이곳에서 활동하다 파산과 면책을 접하게 됐다. 결국 올해 파산을 신청해 지난 10월 7000만원에 가까운 빚을 면책 받았다.
“4000만원이 조금 못 되던 원금은 갚아도, 갚아도 불고 불어났다”는 고씨는 면책 뒤 저소득층의 아동을 돌보는 가정보육사가 있다는 말에 올 초 교육을 받았다. 느지막한 나이에 일자리도 생기고 보람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3월부터 가정보육사로 활동하다 5월 중순께 김유리(14·가명)·유진(11·가명)자매를 만났다. 가정보육사는 원래 10세미만 저소득층 아동들을 돌보게 돼 있지만 자매의 문제가 심각해 특별히 맡게 된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 자매는 적대적인 눈빛을 한 채 도저히 정을 붙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꾹 참고 달래며 아이들의 행동과 시각을 이해한 시간이 흘러 이제 유진이는 고씨가 없으면 불안해 할 정도로 친해졌다. 매일 오후 4시부터 밤 10시까지의 시간을 보내며 함께 밥 먹고 얘기를 나눈 결과로 자매는 많이 밝아졌다.
유진양은 “선생님이 있어서 집에 오는 게 싫지 않다”며 “머리 감겨 주고 함께 밥 먹고 맛있는 거 사줘서 다 좋다”고 말했다.
고씨는 “한번은 자매가 집에 놀러왔는데 가족사진을 뚫어져라 보는 것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며 “조금씩 밝아지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지금 옳은 일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많은 반성이 따른다”고 말했다.
고씨는 또 “빚더미에 앉았을 때는 세상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싫었지만 아픔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눈을 뜨고 새 삶을 사는 것 같다”며 “앞으로도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조그마한 힘이라도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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