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예술인들이 변화를 택했다
전북예총은 변화를 원했다.
18일 사단법인 한국예총 전북도연합회 ‘제47차 정기총회’에서 서양화가 선기현씨(51)가 20대 회장 황병근씨(71)를 제치고 제21대 전북예총 회장으로 선출됐다.
이번 선거는 전북민예총의 등장으로 안존하던 시대는 갔고, 급변하는 시대에 맞춰 전북예총도 깨어나야 한다는 회원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 동시에 지역사회의 비상한 관심이 예총의 기능과 활동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증거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새 집행부 출범과 함께 10개 협회와 9개 시·군 지부를 이끌고 있는 수장들이 전북예술의 중심에 서서 최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 선기현, 4년 전 설욕에 성공하다
18일 오전 10시30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47차 정기총회’는 시작 전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4년 전 20대 회장 선거에서도 두 후보가 3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고, 투표 전에도 추대설과 연대설 등이 난무하면서 혼탁 양상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선기현 후보측이 회의장 입구에 선거요원들을 배치하고 체계적으로 선거 운동을 펼친 반면, 20대 회장 자격으로 정기총회를 진행해야 하는 황병근 후보측은 회의 준비에 바빴다.
50대의 패기와 70대의 연륜이 맞붙은 이번 선거는 정견발표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선후보는 파워포인트를 이용해 공약인 ‘파랑새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으며, 황후보는 지난 임기 동안의 실적과 각 협회와의 인연을 내세우며 표를 호소했다.
두 후보가 직접적으로 부닥친 것은 발전연구위원회의 성격. 선후보가 먼저 “황후보가 재임 시절 발전연구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위원 대부분이 대학교수이고 예총 회원은 2∼3명에 불과해 피부에 와닿는 정책 개발은 하지 못했다”고 공격했다. 이에 대해 황후보는 “발전연구위를 교수 중심으로 꾸린 것은 민예총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울타리 역할을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투표 시간은 투표 시작으로 부터 1시간 30분 동안이었지만, 32분만에 완료됐다. 감표 및 참관위원들이 개표를 하던 중 선후보측 위원은 주먹을 들어보이며 일찌감치 승리를 예고했다. 개표 결과 총 116표 중 선후보가 62표, 황후보가 54표를 획득했으며 무효표는 없었다. 황후보는 당선인의 소감 발표를 들은 후 이내 자리를 떴다.
△ 구시대 탈출, 예총도 변화 바람
선기현 당선자와 황병근 후보의 표 차이는 단 8표. 20대 집행부에서 회장과 부회장이 당연직으로 투표권을 가진 것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10표 차이였다.
황후보 측에서는 19개 협회 및 시·군 지부 중 1∼2곳을 제외하고는 자신을 밀고있다고 공공연하게 밝혀왔고, 선당선자 측에서는 10표 정도 우세하다고 점쳐왔었다. 실제로 황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던 일부 협회 및 시·군 지부는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며 조심스럽게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는 각 분야에 걸쳐 전문성을 지닌 원로들이 예총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뇌한 까닭으로 보인다.
황후보의 선거전략 역시 선당선자에게 밀렸다는 평가다. 구체적인 비전을 원하던 회원들의 바람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분석. 황후보가 정견발표에서 “특별한 공약을 제시하지 않고서도 4년 동안 운영해 왔기 때문에 그동안의 실적을 토대로 하겠다”고 말하자, 이를 듣고있던 회원들 사이에서는 “정책없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나면 누가 표를 주겠냐”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또한 선거 전부터 나돌기 시작한 온갖 설들도 황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협회장 및 지부장들이 내부 합의없이 황후보를 추대하기로 했다는 둥, 황후보가 출마를 희망하는 다른 후보와 회장 임기를 두고 연대했다는 둥, 황후보를 중심으로 부정적인 소문이 돌면서 결과적으로는 선거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이번 선거를 보는 전북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자의든 타의든, 이제 전북예총도 변화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평했다. 특히 예총 소속 회원들은 “협회장이나 지부장 몇명이 예총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며 “이번 기회에 그동안의 문제점들을 뿌리 뽑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의견이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 선거 후 남은 과제
두 후보의 표차이가 얼마 나지 않으면서, 새 회장에게는 두 갈래로 나뉘어진 회원들을 하나로 아우르는 일이 시급한 문제로 떠올랐다.
또한 각 협회나 시·군 지부 회장 선거 등 예총 회원단체들의 선거가 1∼2월에 집중되면서 이에 대한 관심도 요구되고 있다. 특히 돈문제로 말썽을 일으킨 전주예총의 경우 전북예총 위상과 직결되는 만큼 회원들이 신중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제반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전북예총과 회원단체들이 사용하고 있는 소리전당 일부 시설에 대해 전북도의 무상 임대기간이 끝나면서 이 또한 만만치 않은 과제로 떠안게 됐다.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전북예총 조직 및 운영규정’에 대한 개정 필요성도 지적됐다. 회장직을 유지하면서 후보로 등록하고 투표권을 갖거나 협회와 시·군 지부 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경우 대의원 자격이 중복되는 등 선거의 형평성에 시비를 일으킬 만한 조항들이 있어 개정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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