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어난 절경 뒤 듬성듬성한 뒷모습에 놀라…데미샘 물길 따라 걷다 보니 바위가 구름되어
▲ 과학자들의 상상력
지구 탄생에 관한 과학자들의 설명을 듣고 있자면, 그 진위 여부보다 장쾌 무한한 상상력에 경외감을 금치 못할 때가 많다. 우주의 탄생을 추측하는 '빅뱅'이니 '블랙홀'과 같은 이야기는 사실 내 용량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내 상상력은 도무지 지구 대기권 바깥을 꿈꾸지 못 한다. 이런 이야기이다.
…현재 지구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원시 지구는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운석이나 미행성들에게 쉴 새 없이 '얻어터져가며' 멍든 몸집을 키웠다는 것이다.(이것이 '성장소설'이다) 그렇게 날아드는 '펀치'를 그저 피가 튀고 뼈가 꺾이는 것만으로 견딘 원시 지구는 마침내 '곤죽'이 되고 말았는데 그게 '마그마의 바다'란다. 상처는 울분을 부르고, 결국 화로 터지게 마련. 제 스스로 내쉬는 입김에 눈이 흐려 한 치 앞도 분간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을 때, 그 미만(彌滿)한 열습기가 우주 저 먼 곳을 향해 뭉클뭉클 치솟아 지들끼리 엉겨 붙어 어머어마한 구름띠를 이루게 되는데, 그 찰나의 순간… 후덥지근한 열기층과 차가운 우주의 원시 대기와 충돌하면서 지구 표면을 향해 폭우가 쏟아지게 되었다는 것이다.('리얼리즘'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우주적 해프닝'에 의해 쏟아진 '첫 비'가 부글부글 끓는 용암덩이 위에 쏟아지자 동시반사적으로 맹렬한 수증기가 피어오르는데, 그 양이 지금 지구 표면을 덮고 있는 바닷물의 총량만큼 많았다는 것이다. 이때 우주를 떠돌던 각종 원소들이 모두 유황비에 섞여 지구로 쏟아지고, 그 뜨거운 '불비'가 마그마의 바다를 난타할 때마다 그 속에 숨어 있던 물의 입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튀어 올라 뭉게구름이 되고, 폭우가 되고 다시 구름이 되길 반복하기 수 억 년(공전절후의 상상력을 여기서 본다)…
▲ 마이산의 추억
인간의 시간대로는 측정할 길이 없는 멀고도 먼 시원(始原)…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이와 같이 제 더운 숨에 겨워 미쳐 날뛰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식어가며 딱딱하게 굳고 육지와 바다가 분리되면서 원시 바다가 형성되기 시작하니, 달군 쇠를 찬 물에 집어넣을 때 발생하는 것과 같은 충격으로 지표는 갈라터지고 응결되는 가운데 차츰차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지구의 모습이 주물러졌다는 것인데… 이쯤 되면, 현재 육대주가 모두 한 땅어리였는데, 짜개지고 흩어져 지금 모양이 되었다는 '판 구조론' 정도는 그저 소소하게 들릴 따름이다. 이런 단위 단위의 시간이 보통 수억 년…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난 이와 같은 과학 '서사'의 입증이나 재현 가능성에 솔직히 큰 관심은 없다. 그럼에도 내가 이런 이야기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순전히 내 고향 진안의 마이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이산의 발치에서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지냈던 내게 마이산은 유년의 놀이터, 추억의 공장 같은 곳이었는데, 제법 빼어난 앞모습과는 달리, '원형탈모'라도 걸린 것처럼 듬성듬성한 마이산 뒤통수는 적잖이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그런 형상을 암석에 염풍화 작용이 가해진 '타포니(taffoni)'라고 한다는, 과학 선생님의 점잖은 설명도 내가 세계와 조우하며 겪게 된 첫 충격을 감소시켜주진 못 했다. 초등학교 4학년 적, 봄소풍을 갔을 때는 거기서 나어린 중학생의 손에 의해 어이없이 출토(?)된 삼엽충 화석이란 것을 직접 만져본 일도 있었다.
모두 다 아다시피, 마이산은 한반도의 고지대 '진안고원'에서도 우뚝한 봉우리, 한데 여기가 바다였다면, 이보다 키 낮은 지상의 것들은…?(진안 사람들은 진안읍의 주산 격인 '부귀산'을 '배대기산'이라고도 한다. 한 때는 거기에 배를 댔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인데, 아… 도대체 어떤 할배가 그 시절을 목격하고 증언을 남겼는지, 어린 시절 난 무척 오랫동안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아마 난 그때부터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된 듯 하다.
▲ 데미샘, 물길을 거슬러 오른다는 것
섬진강의 발원지로 알려진 진안군 백운면 원신암마을 데미샘으로 가자면 지구 탄생의 비밀을 보여주는 마이산의 뒤안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그곳으로 가다 보면 아름다운 마을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마을 전체 이미지 혁신 사업이 한창인 면소재지도 거쳐야 한다.
앞선 이야기를 조금 더 연장해서 생각해보면, 이 지구에 난 첫 길은 모두 물길이었을 것이다.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흘러 너른 유역을 만들고, 마침내 세상의 물들은 모두 바다에 모여 뭉게구름으로 피어올라 떠돌다 비로 쏟아진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물길은 지구가 처음으로 제 몸에 그린 지도라고 할 수 있다.
참으로 놀라운 일 아닌가! 대기가 형성된 이후 여기 지구에 갇힌 것들은 어떤 것도 지구를 빠져나가지 못 했다.(이소연씨를 비롯한 우주인들이 우주에 가서 소비한 것은 아직까지 극히 미미한 소량이니 논외로 치자) 지금 우리가 마시는 물은 수 천 년 전 우리 조상들이 마셨던 그 물이다. 지구의 생명 시스템은 자급자족과 자기정화라는 두 가지 틀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환경을 염려하면서, 우리가 '엔트로피'를 운운하는 까닭이 여기 있을 것이다. 결국, 파 먹을 것은 우리 자신 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물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 발원지를 찾는 행위는, 순환과 자기 정화로 일관한 지구의 생애를 더듬어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개울물 모여서 시냇물, 시냇물 모여서 큰 강물'이라는 동요가 가르쳐주듯이, 하나의 강은 수 많은 물줄기가 합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물줄기의 길이를 따져 발원지를 찾는다는 것, 우리는 늘 근원이 궁금한 것이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 왔고, 어떻게 흘러왔는가?
▲ 바위의 다른 이름, 운근(雲根)
데미샘이란 이름은 데미샘이 포함된 산봉우리 '천상데미'로부터 왔다. 세상의 물과 흙과 바위들이 자신들의 첫 고향, 저 멀고먼 하늘이 그리워 고개를 치세웠다는 것…
따라서, 데미샘을 향해 걸어 올라가는 길은 섬진강의 발원지를 찾는 일임과 동시에 하늘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걸음을 옮기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원신암에서 데미샘까지 왕복 4킬로 남짓, 아이들과 함게 걷기에 적당한 거리와 경사도를 지닌 탐사길이다. 요즘 '자연보도'라고 조성한 길들 중에는 산의 형세나 거기 사는 짐승들의 동선을 무시하고 만들어지는 것들이 많은데, 그런 점에서 보면 데미샘 가는 길은 걷는 자와 자연 모두를 배려한, 최소한의 인공만이 가해진 매우 아름다운 자연보도라 할 수 있다. 특히, 물길을 따라 걷는지라 그 청량함이 남다르다. 아래로 흐르는 물길의 흐름과 그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보행자의 발걸음이 이 숲길에서는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바윗돌 사이로 졸졸졸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를 보다가, 문득 '운근(雲根)'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옛사람들이 바위를 그렇게도 불렀다. 산정에 외따로이 놓인 바위가 어느 날 문득, 제 육신의 무게를 벗고 싶으면 훌훌 구름이 되어 날아간다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시라, 마을 뒷산에 있던 바위가 홀연 사라진 일은 없었는지? 사라졌던 바위가 밤새 다시 나타났다면, 구름은 당신이 그리워 다시 바위가 된 것이다.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에 관한 설명 중 이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또 있을까 싶다.
거슬러 오르는 길, 땀에 젖은 발뒤축이 자꾸 땅속으로 꺼지는 것 같으면,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거기 하얀 구름이 떠 있다, 당신의 마음은 벌써 정상 그 너머에 둥실 떠 있는 것이다.
또, 이 여름에는 하늘의 구름만큼 기기묘묘, 변화막측한 구경거리도 구하기 쉽지 않다.
/김병용(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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