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소리꾼' 예우 큰 의미…미숙한 무대운영은 아쉬워
이른바 자웅을 다투는 라이벌 관계에 있던 명창들은 한 무대에 서기를 꺼렸다. 한 자리에서 소리를 하다 보면 직접적인 비교가 이루어지는데, 소리라는 것이 그날 목의 상태나 기분에 따라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섣불리 나서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는 세 사람의 명창들이 한 자리에 나섰다.
'천하명창전'이라 이름 붙인 이 기획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세 사람의 남자 판소리 명창인 김일구, 송순섭, 조통달 선생의 소리를 한 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는 취지에서 기획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이 누구인가? 그야말로 천하제일이라고 자부하는 소리꾼들이 아니던가?
그런데 정말 이들의 소리를 한 자리에서 한꺼번에 들어보기 위해서 이 프로그램이 기획되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연출의 개념을 도입한 다양한 볼거리와 판소리 외에도 기악이나, 춤 등이 함께 등장하는, 그래서 세심한 손길이 느껴지는 이 공연 내용을 설명하기 어렵다. 이 공연의 진정한 기획 의도는 공연 끝에 드러난다. 세 사람에게 안숙선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의 이름으로 '천하명창 기념패'를 증정한 것이다. 아, 그렇다면 이들이 판소리 창자로서 한 평생을 살아오면서 이룩한 공로와 헌신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이 공연이 마련된 것이었구나.
그랬기 때문에 이 공연에는 특별하게도 드레스를 입은 진행자가 등장하였고, 무대 뒷면에 화면을 두어 명창들의 활동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여주었다. 진행자의 우리말 진행을 영어와 수화로 통역하기도 했다. 기악연주자들이나 무용가, 젊은 남녀 소리꾼들의 민요 또한 이들의 공적과 헌신에 대한 헌사였던 것이다.
소리축제가 판소리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판소리에 한 평생을 바쳐 최고의 경지에 오른 명창들에 대한 예우는 당연한 것이다. 소리축제가 아니라면 어디서 이들을 예우할 것인가? 이러한 기획은 사실 진작 있어야 했다. 8년만에야 이런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것은 늦었지만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올해에도 귀중한 문화재 오정숙 명창이 세상을 뜨지 않았던가? 이제 첫 걸음을 내디뎠으니, 앞으로 이러한 자리는 계속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처음이다 보니 부족한 점도 많이 눈에 띄었다. 진행자의 판소리에 대한 이해 수준, 영상과 소리의 일치 여부, 춤이나 기악 연주와 소리의 조화, 레파토리의 선정 등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욱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사실 예우가 목적이었다면 지나치게 과감한 기획은 삼가는 게 나았을 것이다.
'천하명창전'은 소리축제가 계속되는 한 계속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다른 어떤 프로그램보다도 더욱 정제되고, 품위 있고, 엄숙하고, 그러면서도 흥에 겨운 자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한 평생을 판소리에 헌신한 이들에게 우리가 보낼 수 있는 경의에 합당한 것이 아니겠는가.
/최동현(군산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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