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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동화 당선작-걸치기 할아버지(장은영)

"야, 걸치기!"

 

  교문을 나서는데 민기가 또 할아버지 방앗간 이름을 부른다. 머리카락 끝이 곤두섰다. 나는 돌아서서 민기를 노려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민기는 발을 까딱까딱하면서, 양손으로 드럼 치는 흉내를 냈다. 입으로 두두두두 장단까지 맞추면서 말이다. 그리곤 목에 두른 손수건을 풀어 하늘을 향해 던졌다. 분명히 막걸리에 취한 채 드럼을 치던 할아버지 모습을 흉내 내는 것이다.

 

  "저 자식이."

 

  나는 이를 꽉 깨물며 주먹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민기가 혀를 쑥 내밀고는 그대로 달아났다. 할 수없이 집으로 향했다.

 

  나는 대문을 발로 팡 차고 들어갔다.

 

  "아이구, 우리 수호가 왜 그려. 학교에서 뭔 일 있었어?"

 

  마당에서, 널어놓은 고추를 뒤집던 할머니가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몰라, 할아버지 때문에 창피해 죽겠단 말야."

 

  나는 어깨에서 가방을 내려 마루로 던졌다. 영문을 모르는 할머니의 두 눈이 더 커졌다.

 

  "늬 할애비가 뭘 어쨌게. 또 잔소리 늘어 논겨?"

 

  "애들이 나만 보면 놀린단 말야. 걸치기 할아버지가 생뚱맞게 드럼 친다고."

 

  "뭐여? 하여튼 이놈의 영감, 젊을 때부터 뭘 두드리는 것만 좋아하더니 다 늙어서 고집을 피우네. 참말로 주책이지. 영감이 뭔 드럼이여 드럼이."

 

  할머니가 내 등을 다독여 주었다.

 

  "수호야, 수호야."

 

  골목 끝에서부터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휴, 진짜 짜증나!"

 

  어른이 돼가지고 창피하지도 않은가 보다.

 

  할아버지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만큼 고집도 세다. 할머니가 말려도 하고 싶은 일, 사고 싶은 것, 맘대로 다 한다. 새벽부터 일어나 논에 가서 한바탕 일을 한 후, 또다시 걸치기 방앗간으로 갈만큼 부지런하다.

 

  점심을 먹은 할아버지가 부리나케 옷을 갈아입었다. 반짝이 무대 옷이다. 목에는 빨간색 손수건을 멋 내서 둘렀다. 그리고는 바로 걸치기 방앗간으로 간다.

 

  방앗간 귀퉁이에 있는 방에는 드럼, 전자 기타, 전자 피아노가 있다. 모두 할아버지가 목돈을 들여 사 놓은 것들이다. 할아버지는 주말마다 그 곳에서 드럼 치는 연습을 한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교실로 들어오는데, 민기가 또 내 앞을 가로 막았다.

 

  "요즘 걸치기 할아버지 드럼실력, 많이 늘었냐?"

 

  민기는 한 팔을 올리고 제자리를 빙빙 돌며 엉덩이를 흔들어 댔다. 지난 번처럼 술에 취한 할아버지 모습을 흉내 내는 것이다.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엉덩이춤을 따라 하면서 낄낄거렸다.

 

  화가 난 나는 민기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민기는 내 손을 잡아떼더니 주먹으로 가슴을 때렸다.

 

  "선생님 오신다."

 

  누군가의 말에 아이들이 흩어졌다. 민기가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할 수 없이 나도 자리에 앉았지만, 민기가 추던 춤을 생각하니 다시 화가 치밀었다.

 

  방앗간에 악기가 들어오던 날, 할머니는 할아버지더러 정신이 나갔냐고 소리쳤다. 나도 할아버지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할머니 몰래 살금살금 방앗간으로 갔다.

 

  방앗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여 있었다. 아이들 몇 명도 보였다. 흥에 겨운 사람들이 박수까지 치며 엉터리 드럼 치는 모습을 구경했다. 드럼 소리 때문에 방앗간 전체가 들썩들썩했다.

 

  할아버지는 빠른 템포에서 한 번씩 박자를 놓치기도 했다. 하지만 온 몸을 흔들면서 열심히 드럼을 쳐댔다. 얼굴에서 땀이 흘렀다.

 

  구경하던 옆집 할아버지가 냄비뚜껑을 들고 따라서 두드려댔다. 뒷집 할머니는 방바닥을 두드렸다. 막걸리 한 잔 걸친 할아버지의 드럼 소리에 모두들 신이나 한바탕 춤을 추었다.

 

  연주는 '두두두두'하는 드럼 소리로 절정을 이루었다. 마지막 드럼 소리가 끝나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신이 난 할아버지는 앞으로 뛰어 나와 엉덩이춤까지 추었다. 목에 두른 등산용 빨간 손수건을 천정으로 높이 던져 올리며 끝을 알렸다

 

  나는 눈을 비비고 우리 할아버지가 맞는지 확인을 했다. 하지만 놀라움도 잠시, 할아버지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할아버지!"

 

  나는 놀라서 할아버지를 부축했다. 언제 왔는지 민기가 그런 할아버지를 쳐다보고 좋아 죽겠다는 듯 낄낄거리며 웃었다.

 

  토요일인 오늘도 할아버지는 드럼 연습을 하려고 준비했다.

 

  "할아버지, 드럼 치는 게 그렇게 좋아?"

 

  "그럼, 좋지. 내가 늘그막에 호강 혀. 살맛이 난당께."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말문이 막혔다. 그런데 만날 나를 놀리던 민기 모습이 떠오르자 마음이 답답해졌다.

 

  "할아버지, 꼭 드럼만 쳐야 돼? 다른 거 하면 안 돼?"

 

  "왜? 난 드럼이 좋은디?"

 

  할아버지 표정이 굳어졌다.

 

  "그래도 빠른 박자를 맞추려면 힘들잖아."

 

  "긍께 내가 만날 연습을 하잖여."

 

  "그게 연습으로 되는 게 아니야. 늙어서 안 된다니까."

 

  "그려도 나는 드럼이 젤 좋은디 어쪄. 드럼 두드리면 속상한일, 보고 싶은 마음들, 시원하게 털어버릴 수 있어서 좋당게."

 

  "그럼, 나는? 애들이 만날 드럼 치는 할아버지 흉내 내면서 놀린단 말이야."

 

  "뭐라고? 아무 것도 모르는 놈들이……."

 

  할아버지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잠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증조할아버지가 마을에 있는 빈 집을 하나 샀어. 지나가던 소리꾼이며 풍류쟁이 하다못해 떠돌이들도 그 곳에서 묵어가도록 했재. 소리를 좋아하던 네 증조할아버지는 나그네가 갈아입고 갈 수 있는 옷까지 준비해서 방 안 횃대에 걸쳐놓곤 했당께. 근디 그런 분이 병으로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겨."

 

  잠시 말을 멈춘 할아버지는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분이 돌아가신 뒤에도 누군가 그곳에 쌀을 갖다 놓고 옷을 걸쳐놓곤 했어. 사람들은 우리 마을을 가난한 풍류쟁이들이 쉬어갈 수 있는 걸치기 마을이라고 불렀재. 나도 아버지를 생각하며 방앗간 이름을 걸치기라고 지은거여."

 

  할아버지 눈가가 젖어있었다.

 

 "증조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그래?"

 

 "그려. 내 아버진데 왜 안 보고 잡겄어. 이제는 먹고 살만하니께 나도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단 말여."

 

  할아버지가 환하게 웃었다.

 

  겨울방학이 며칠 남지 않았다.

 

  동네 입구에 커다란 플레카드가 붙었다.

 

  "걸치기 방앗간 송년회."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을 방앗간으로 초대했다.

 

  할아버지는 무대 옷을 입고 방 한가운데서 드럼을 쳤다.

 

  요즘 우리들 사이에 인기 있는 노래가 연주되자 아이들이 함께 합창을 했다.

 

  나는 앞으로 뛰어나가 춤을 추었다. 아이들이 팔을 흔들며 박자를 맞추고 소리를 질렀다. 머뭇거리던 민기 녀석도 뛰어 나왔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개다리 춤을 추었다.

 

  지켜보던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 흥에 겨워 어깨가 들썩들썩했다.

 

  걸치기 방앗간이 웃음소리로 떠들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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