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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진안 방곡마을 16가구 전국 첫 마을자서전 '방곡에 살다' 출간

평범한 이야기 속 그 따스한 인간애

자신의 일생을 소재로 스스로 짓거나 남에게 구술해 쓰게 한 전기가 자서전이라면, 토박이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통해 마을의 역사를 읽는 시도는 마을 자서전이 된다.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 방곡마을. 방곡마을 자서전 「방곡에 살다」가 나왔다.

 

"벼농사, 인삼농사, 고추농사, 깨농사…. 심심할 겨를이 있간디. 서로 사랑하고 아끼면서 살아야지. 뽁딱뽁딱 하면서 살면 뭐하겄어."

 

전형적인 농촌마을. 운장산에 안긴 방곡마을에는 유난히 가을이 빨리 온다.

 

방곡마을에는 총 열아홉 가구가 살고있다. 그러나 그 중 한 가구는 마을과 동떨어져 있어 공동체로 묶일 수 있는 요소가 적고, 나머지 두 집은 마을에 산다기 보다는 '왔다 갔다' 한다는 말이 더 맞다. 토박이라고 할 수 있는 집은 열여섯 가구 뿐. 자서전에도 열여섯 가구의 이야기가 담겼다. 방곡마을 자서전이 더 의미있는 것도 전국 최초로 마을에 살고 있는 토박이들의 삶을 전부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방곡마을에서는 빨치산과 천주교 관련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빨치산이 처음 쳐들어왔을 때는 미처 대항하지 못해 온 마을이 약탈당하고 불에 타버렸다. 그 사건으로 3명이 죽고, 1년 동안 동네에는 사람이 접근하지 못했다. 아랫마을에 피난해 있던 마을 사람들은 자비로 총을 사들고 스스로 치안대를 조직해 빨치산을 몰아냈다. 열일곱살이란 어린 나이, 총부리를 겨누며 무섭기도 했었지만 나와 내 가족이 살아온 터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인 점도 마을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방곡마을은 오래 전 천주교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이 모여들면서 커진 마을이다. 유아세례를 받고 지금껏 독실하게 종교생활을 해오거나 천주교 집안끼리 혼사를 치르거나 한 경우가 많았다.

 

방곡마을에서 태어나 한번도 마을을 떠난 적이 없어 60호가 넘게 살던 마을의 옛 모습까지 기억하고 있는 김애순 할머니, 1985년부터 지금까지 부녀회장을 맡고 있는 김선자씨, 예순 다섯의 유순애 할머니와 네살짜리 손녀딸 민지, 그리고 유순애 할머니의 어머니인 아흔살 신오목 할머니가 살고있는 세 여자들의 집, 무쇠솥이 걸려있는 재래식 아궁이가 오랜 세월 손때로 반질반질 윤이 나는 김영기 정종님 부부집까지,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재밌다.

 

김봉노 할아버지는 평안남도 평양 모란봉 밑이 고향이지만, 방곡마을에 산 지 52년이 됐다. 지금은 경로당 회장도 맡고 있다. 세상 떠난 남편 이름이 적힌 문패를 아직도 걸어놓고 있는 박덕례 할머니는 매일 아침 새벽기도를 다니며 자녀들과 이웃, 나라,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한다. 벽지 대신 아버지의 서예작품으로 벽지를 바른 박하나씨, 팍팍한 도시 생활이 싫어 귀농한 마을 간사 조헌철씨의 경상도 사투리는 전라도 사투리 속에서 유난히 튄다.

 

방곡마을 자서전은 마을의 고유한 전통문화와 지식을 발굴, 농가소득을 증대시키고 독특한 농촌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2008 농촌전통테마마을조성사업'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지난해 9월과 10월 두 달동안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기록한 것으로, 글은 최정학 김효정 김영신씨가 썼다. 1년 중 가장 바쁜 때 농촌마을을 찾아갔으니 들일까지 따라 나서 주민들과 함께 깨를 털거나 고추를 말리며 듣게된 귀한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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