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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리얼리즘 시가 걸었던 자리

창비시선 300번째 시선집 발간

신경림의 '농무'에서 김용택의 '섬진강',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까지 한국 현대시사에 굵직굵직한 자취를 남겨온 창비시선이 어느덧 300번째를 맞았다.

 

창비는 창비시선의 300번째 책으로 기념시선집 '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나다'를 출간하고 20일 고세현 대표와 신경림, 이시영, 나희덕, 박형준, 문태준 시인 등이 모인 가운데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박형준, 이장욱 시인이 엮은 이번 시집에는 지난 2000년 200번째 기념 시선집 '불은 언제나 되살아난다' 출간 이후 9년간 201-299번째 시집을 낸 시인 86명의 작품 중에서 '사람과 삶'이라는 주제에 맞는 시들을 뽑아 수록했다.

 

창비시선은 본격 상업출판 시대의 출발이었던 1975년 3월, 신경림의 '농무'를 시작으로 대장정의 첫발을 내디뎠다. '농무'는 모더니즘 경향의 시가 주류를 이루던 당시 시단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농무'부터 모두 9권의 시집을 창비시선을 통해 출간한 신경림 시인은 "그때만 해도 창비가 정부 탄압 속에 얼마 못가 문 닫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창비시선이 이렇게 오래 지속될지는 상상도 못했다"며 감회를 밝혔다.

 

창비 부사장을 지낸 이시영 시인은 "'농무'가 나왔을 때 이렇게 사람 사는 이야기를 시에 담아도 되는가 할 정도로 큰 충격을 줬다"며 "큰 의미를 지녔던 '농무'의 출간이 창비시선의 앞날을 예감해주는 게 아니었나 한다"고 말했다.

 

농무 이후 창비시선은 고은의 '새벽길', 곽재구의 '사평역에서', 김용택의 '섬진강' 등 시대의 현실과 보통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시들을 잇따라 소개했다.

 

현실과의 소통을 추구했던 창비의 리얼리즘 시집들은 1970-80년대 엄혹한 시절을 거치며 여러 고초를 겪기도 했다.

 

1982년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를 출간할 당시 편집장이었던 이시영 시인이 안기부에 연행되기도 했으며 이밖에 조태일의 '국토', 황명걸의 '한국의 아이', 양성우의 '북치는 앉은뱅이', 이종욱의 '꽃샘추위' 등이 긴급조치 위반 등으로 판매금지됐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51만3천 부 이상 팔린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비롯해 정호승의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12만3천 부), 박노해의 '참된 시작'(10만7천 부) 등의 '대형 베스트셀러' 시집도 나왔고 2000년대 이후 김중일, 김근, 정영, 신용목 등 새로운 경향의 젊은 시들도 다양하게 소개됐다.

 

나희덕 시인은 "최근에는 창비시선이 과거의 뚜렷한 정체성을 잃어가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는데,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시도 변해야 한다"며 "창비는 고유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변화하는 시의 지형도 속에서 새로움과 다양성을 갖추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형준 시인은 "시대가 변해도 창비시선에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공통으로 있다"며 "요새 시들이 많이 내면화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사람에 대한 일관된 정서 같은 것이 공통으로 흐르는 점이 오늘의 소통 불능 시대에서 또 다른 의미의 소통을 가능하게 할 창비시선의 저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창비는 5월 출간될 301호 나희덕 시집부터 창비시선의 장정을 새롭게 한다. 호흡이 길어진 요새 시들을 수용하기 위해 판형을 키우고, 표지도 사진으로 꾸미게 된다.

 

이와 함께 이날 저녁 서울 서교동의 상상마당에서 300번째 창비시선 발간을 기념하는 북콘서트를 연 것을 비롯해 다양한 행사도 마련했다.

 

북콘서트에는 창비의 백낙청 편집인과 신경림, 이시영, 김사인, 나희덕, 문태준, 손택수 시인 등이 참석해 1970-80년대를 중심으로 창비 시선이 걸어온 길을 돌아봤으며 안치환, 민설 등의 축하공연도 마련됐다.

 

또 24일 수원을 시작으로 6월까지 광주, 울산, 부산, 전주, 제주, 충북 등 전국 10개 안팎 도시에서 여러 시인들이 참가하는 시 낭송회도 개최하며 34년간 나온 주요시집 36종을 저자 사인본으로 판매하는 이벤트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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