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것이 더 많은 소박함속에 천년세월 간직한 국가보물 극락전·우화루
전북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1078번지.
화암사(花巖寺)로 가는 길은 입구가 흐릿하다. 그래서 더욱 눈을 번쩍 뜨고 정신을 차리게 된다. 17번 국도 고산∼운주간 용복마을을 지나 4.5km. 갈림길마다 안내판이 있지만 다음 안내판이 나와야 그 이전 안내판을 제대로 읽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이다. 구불구불한 시멘트길이 밭머리를 지나 흙벽집 옆구리도 살피고, 시골처녀 같은 감나무, 대추나무 허리 휘감았다가 놓는다. 그렇게 길에 얹혀 오르다보면 자동차 10여대 세워 둘 수 있는 주차장이 나온다.
화장실 한 칸 덩그러니 웅크리고 있는 공터이지만 목욕에 앞서 먼저 알몸이 되어야 하는 목욕탕 탈의실과 같은 곳이다. 진짜 화암사에 가기 위해서는 이 곳에서 차를 두고 핸드폰도 꺼야 한다. 시계도 풀어야 한다. 여기에서부터 1km 남짓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화암사다. 천년이 훨씬 넘은 절집이니 어림잡아도 1m에 1년이다. 천년을 거슬러 오르는 길치고 경사가 완만하다.
오르는 길은 둘이 나란히 걷기에는 노폭이 좁다. 일행이 있어도 혼자가 되는 길이다. 길가에 나무들이 명찰을 달고 있다. 고로쇠나무, 갈참나무, 느티나무, 떡갈나무, 편백나무…. 키가 큰 나무가 명찰을 달고 있으니 어딘가 모자라 보인다. 그렇지만 내색은 못하고 낯선 방문객도 제 이름을 낮게 일러준다. 이렇게 통성명을 했으니 친구가 된 셈이다.
도시의 길이 컴퓨터 워드 글씨라면 이곳의 길은 손으로 쓴 연필 글씨다. 엎드려 침을 묻혀 쓴 연필 글씨가 구불구불 계곡을 타고 산기슭을 오른다. 침묵과 고요 사이 계곡물만 음표를 그렸다가 지웠다가 한다. 지금은 초여름이라 꽃은 보이지 않고 짙푸른 녹음 사이 산새 소리만 아련하다.
오르다 보면 계곡물과 오솔길이 몇 번 교차하게 되는데 전봇대가 누워 다리가 되고, 건축공사장에서 쓰는 비계용 철판이 다리가 되던 길이 말끔하게 새 단장을 했다. 누워 있는 전봇대를 뒤뚱뒤뚱 건너던 것보다 한결 편해졌는데도 왠지 서운한 것은 무슨 심사일까.
바위 절벽에 다다르니 위압적인 철재 계단이 폭포 위로 벼랑을 감싸고 있다. 시계를 두고 왔지만 2009년이란 시간의 분침과 초침이 여기까지 들어와 있음을 실감하는 풍경이다. 매번 보는 모습이지만 언제나 낯설다.
애써 철재 계단을 외면하고 바위 절벽 위쪽 옛길을 더듬더듬 찾아간다. 조심조심 올라 난간에 서니 시야가 탁 트인다. 지나온 길이 훤하게 보이고 산의 능선과 협곡의 골짜기가 밀착해서 주고받는 곡선이 드러난다. 이곳은 남들 눈에 잘 띄지 않아 사랑이 꽃피는 연인이라면 바위 위 단단한 입맞춤 새겨 두기 좋은 곳이다. '화암사'라는 절 이름에 대한 전설이 바위 위의 꽃 이야기인 것을 상기해 보면 묘한 울림이 생긴다.
난간을 뒤로 하고 폭포소리를 지나친다. '잘 늙은 절집' 조용히 앉아 있다. 대둔산의 지맥인 불명산 시루봉 중턱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의 말사 화암사. 하나하나 뜯어보면 검버섯도 피었겠지만 아주 곱게 늙어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꽃비가 내린다는 우화루 처마 아래에 '佛明山花巖寺(불명산화암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낡았지만 정정한 기둥을 따라 시선을 낮추니 밑동 시작되는 높이가 제각각이다. 자연석을 딛고 있는데 어디까지가 건물이고 어디부터가 자연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천 살을 넘기면 저런 여유가 생기는 것인지 희미한 단청을 다시 칠하지 않고 사철 변하고 조석으로 춤추는 하늘빛과 산빛을 낯빛 삼고 있다.
화암사는 그 흔한 일주문도 없다. 우화루 옆 작은 대문이 경내로 들어가는 문이다. 문지방은 움푹 파인 달문이다. 좌우를 살펴보아도 금강역사나 사대천왕은 보이지 않는다. 문을 넘어서면 우화루와 극락전이 남북으로, 불명당과 적묵당이 동서로 마주 바라보고 서 있다. 마당을 가운데 두고 입구(口)자형으로 배치되어 각 건물들은 지붕이 서로 연결되거나 거의 붙어있어 아늑하다. 사찰이라기보다 살림집 분위기가 더 짙다. 외곽으로 극락전 왼쪽에 입을 놀리는 것을 삼가라는 철영제가 있고 적묵당 뒤편 바위 위에는 산신각 그리고 우화루 옆으로 명부전이 자리 잡고 있다.
밖에서 보면 2층 누각이던 우화루가 마당에 들어서니 단층 건물이다. 기둥에 눈이 툭 불거진 목어가 내장을 비운 채 매달려 있다. 물고기 모양에 충실한 여느 사찰의 목어와 달리 머리 모양이 용의 머리를 닮았다. 안쪽 기둥 옆구리에 크고 투박한 목탁이 운치를 더한다.
우화루 맞은편으로 극락전이 하늘을 이고 서있다. 내부에는 범종과 관세음보살상 모신 닫집이 있다. 극락전은 처마를 길게 늘이기 위한 건축기술 중 하나인 하앙구조를 갖추고 있는 국내 유일의 법당이라고 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바라본다. 극락전 지붕이 요사채 적묵당 지붕까지 넉넉하게 덮어주고 있다. 그리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검은 기와선이 은은한 곡선을 그리고 있다. 뾰족하거나 화려하고 웅장한 일본이나 중국의 기와선과 달리 우아한 한복의 선이 겹쳐진다.
적묵당 마루에 걸터앉아 화암사 마당에 떨어지는 햇살을 보며 한동안 해찰을 한다. 국가적 보물과 문화재를 여럿 간직하고 있는 화암사를 하나하나 살펴보는 일도 좋지만 켜켜이 쌓인 천년이라는 시간과 그 사이 자연과 하나가 된 화암사 풍경에 들어앉아 보는 일로도 족하다.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속사정 침묵으로 묻고 고요로 답한다.
화암사는 지나쳐 갈 수 있는 절이 아니다. 되돌아 나와야 하는 절이다. 방문객은 천년이라는 묵은 시간과 자연의 일부인 화암사 풍경에 푹 빠졌다가 빨랫감이 마르듯이 천천히 2009년으로 되돌아 나온다. 화암사를 향해 있던 마음이 이제는 세상을 향하게 된다. 이제 한동안 화암사는 잊고 살게 되리라. 그것으로 화암사의 몫은 끝이다.
화암사도, 오르는 길도, 풍경은 매번 다르다. 봄을 타지 않는 듯 싶지만 살펴보면 보랏빛 머금은 현호색, 얼레지 그리고 산자고, 복수초 드러나는 봄이 있다. 그리고 봄도 다 같은 봄이 아니고 때죽나무 흰 꽃잎이 계곡물 웅덩이 가득 떠 있는 봄도 있다. 어디 봄 뿐일까. 흰 눈이 덮여 오래된 흑백 풍경이 된 길이며, 만산홍엽에 깊은 한숨이 나오는 늦은 오후도 있다.
하지만 어떤 화암사의 얼굴도 잘 꾸며지고 가꿔진 모습은 아니다. 누가 옆에 서도 어색하지 않은 민낯의 제 어미 얼굴이다. 하여 화암사를 찾고 찾으며 그 모습 변치 않기를 바라게 된다.
/양승수 문화전문객원기자(전주세계소리축제 프로그램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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