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애(시인·샘장학재단 이사장)
예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주제에는 여성상이 많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본 행복을 그린 프랑스 화가 르누아르(Renoir, 1841-1919)는 '욕녀들' '누드' '바느질하는 소녀' 등에서와 같이 여성상을 그린 그림이 많았다. 그의 화폭엔 아름다운 여성의 이미지로 가득 차 있었다. 여성은 르누아르 예술에서 최고의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테마였다.
때문에 그의 그림 속 여인은 세상의 모든 시선을 흡입하기에 충분했다. 여인의 시선과 자태, 미소는 보는 이에게 행복을 느끼게 하는 마력을 지녔으며, 불그스레한 볼에 입맞춤을 하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르느와르 그림을 떠올리니 엊그제 소설가 한 사람을 만난 게 생각난다. 그는 늙고 병든 아내를 위한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절절하게 묻어난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다.
"나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하여 나의 몸을 바칠 것입니다."
마치 혼인서약 때의 맹세처럼 그의 목소리는 쩌렁쩌렁 하였다.
"집에 돌아가면 병든 아내의 발톱을 깎아 줄 것이며 목욕을 시킬 겁니다."
행여 오늘의 결심이 무너질까봐 앉아 있는 부부들 가슴에 높은음자리표로 깊게 새겨 주었다. 애써 힘주어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차라리 '아내를 위한 슬픈 연가'였다. 소설 한 권 쓰는 일보다 더 값진 생이 아니겠느냐며 그는 말을 멈추기도 하였다. 눈물은 뜨거웠는지 눈시울이 빨갛게 젖어 있었다. 그는 면사포를 쓴 아내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서로를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겠다고 한다.
"병든 아내를 사랑 할 것이며……"
지그시 깨무는 그의 입술이 떨고 있었다. 나도 배우자에게 그렇게 하여야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소설을 포기해야 한다고 할 때 우울증과 싸웠다고 한다.
배우자를 보물단지처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게 된다. 노년의 혼인생활은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서로의 존재에 찬사를 보내고 용기를 북돋우며 살아가는데 그 행복이 있지 않나 한다. 배우자에게 지속적으로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상대방이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도록 만들어 준다. 혼인생활을 재건하는 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서로를 믿고 보살피는 행동이 성숙한 만족감을 갖게 하는 일이다. 그는 배우자를 위해 소설 쓰는 일은 중단했지만 르누아르처럼 아내의 모습을 통하여 독자에게 행복을 느끼게 할 소설은 쓰게 될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수필가인 E.B.화이트는 '인류나 인간에 대해 쓰지 말고 한 사람에 대해 쓰는 것, 즉 개인의 삶에서 겪는 드라마나 애환에 대해 쓸 때만 독자의 동감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아내의 모습을 원고지에 옮겨 독자에게 감동을 줄 소설을 틀림없이 쓰게 될 것이다.
/이소애(시인·샘장학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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