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설·창극·뮤지컬·영화·드라마 예술 경계 넘나드는 '절개의 상징'
'춘향'은 이몽룡만의 연인이 아니다. 남원 사람들이나 소리꾼들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한민족의 가슴에 '영원한 사랑의 동반자'로 새겨진 춘향은 누구에게나 한 줄기 청신한 바람으로 다가온다. 춘향을 떠올리면 춘향이 웃음 같은 봄바람이 가슴에 살랑거린다. 화들짝, 춘향꽃도 피어난다….
'한국인의 애정관이 고스란히 담긴 열녀', '사랑과 절개의 상징'…. 춘향을 지칭한 표현들은 한결같지만, '춘향'은 끊임없이 창조되어 왔다. '춘향전' 만큼 이본(異本)이 많은 작품은 흔치 않으며, 20세기 이후로는 시·소설뿐 아니라 연극·창극·마당극·뮤지컬·오페라·영화·드라마·만화 등으로 확장되며 새로운 생명을 얻고 있다. 그만큼 깊고 넓기 때문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영국의 작은 도시 스트랫포드 어펀 에이븐은 작가 셰익스피어만을 위한 도시다. 셰익스피어라는 한 가지 상품에서 파생된 다양한 문화상품을 만들어내면서 원소스 멀티유스 산업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를 만들어냈다. 셰익스피어는 지구상에서 그의 작품이 매일 공연되고 있을 만큼 사랑 받는 작가이며, 왕립 셰익스피어 극장에서는 1년 내내 그의 작품만 상연한다. 400여 년 전 사람인 그의 작품이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주목받는 이유는 보편성 때문이다. '고소설의 백미', '한민족의 고전'으로 불리는 '춘향전'도 마찬가지다. '춘향전'은 시대를 거쳐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스토리가 바뀌기도 하고, 살도 더 붙었지만, 그 보편성만은 변하지 않았다. 이것은 작품에서 말하는 주제가 당대의 사회상과 염원을 반영해왔다는 증거이며, 이것이 '춘향'이 가지고 있는 생명의 근원이다. '춘향전'에는 사랑이라는 주제의 보편성과 당대 사회의 모순에 대한 비판적 저항을 다룬 사회적 측면, 서사·서정·극적 구성을 조화롭게 연결한 구조 미학적 측면이 어우러져 있다. '사랑'을 내세웠기에 보다 현대적인 표현이 가능하고 폭 넓은 감정 공유도 가능하다.
우리는 '춘향'을 통해, 모든 인간은 근원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을 확인해 왔다.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근대 세계의 이념은 이미 '춘향전'에서 싹트고 있었으며, 이 점에서 우리는 모두 춘향의 후예다. 따라서 우리 시대의 춘향을 재창조하는 일 역시 우리의 당연한 몫이다.
다들 아는 '춘향전'. 그대로인 것 같지만 구성이나 전개가 다르고, 전혀 딴 판인 것 같다가도 제 줄기를 찾아가는 '춘향전'의 재구성. 판소리에 등장하는 각 인물들이 자신의 고유성을 잃지 않는 범위에서 지금 시대의 사람들과 만나고, 아쉬움 많은 세상을 풍자하며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꿈꾸는 것. 콧등이 시큰한 감동을 그대로 살려, 아지랑이처럼 아련한 슬픔은 곧 승화되고, '봄날의 향기'처럼 발랄하게 혹은 발칙하게…. 춘향의 온고지신(溫故知新). 이 역시 시대와 한 호흡을 유지하기 위한 대중적인 전통문화운동의 한 방법이다. 다행히 '춘향'은 저작권도 없다.
/최기우 문화전문객원기자(최명희문학관 연구기획실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