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이야기 사랑받을 수 있어 기뻐
국민학교 이학년 여름방학 숙제가 독후감 쓰기였습니다. 국민학교 들어가서야 한글을 배운 제가 그 때까지 읽은 것이라고는 교과서가 전부였습니다. 방학숙제를 하기 위해 책을 사러갔습니다. 시장에는 서점을 겸하는 작은 문방구가 있었습니다. 삼십년 전이라 까마득했었는데 이글을 쓰다 보니 생각나네요. 문방구 이름은 북부문구사였습니다. 소심한 저는 책 한 권 사는데도 뜸을 들이다 아저씨가 집어 주는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책 제목은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였습니다. 그게 처음이었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라고 하지만 제게 있어 첫 키스보다, 첫사랑보다 더 황홀한 첫 경험은 바로 소설(이야기)이었습니다. 이야기는 삽시간에 저를 매혹시켰고 열병에 들뜨게 만들었습니다. 부모님은 이야기책에 홀린 저를 위해 100권짜리 동서문화사 딱따구리 문고를 사주셨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방구석 귀신이 되었습니다. '빨간 머리 앤'을 읽으면 '키다리 아저씨'가 튀어나오고 '꿈을 찍는 사진관'을 읽으면 '만년셔츠'가 튀어나왔습니다. 저를 키운 것은 팔 할이 이야기였습니다.
이부자리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밤마다 조금씩 이야기는 길어졌지만 머릿속 저장장치는 부실해서 오늘 이야기만 만들어지면 지난 번 이야기가 사라졌습니다. 이야기는 그렇게 토막토막 끊어지고 저는 그 이야기를 어디에 써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삼십년이 지났습니다. 어디다 써야할지 몰라 방치해 두었던 이야기들이 아우성을 쳐댔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제가 이야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저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조금 늦되고, 많이 부족한 저를 이야기가 선택했다면 거기에도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썼습니다.
당선소식을 듣고 제가 사랑한 이야기가 다른 분들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게 되어서 기뻤습니다. 방구석 귀신 노릇을 어여삐 보아 주신 부모님, 같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어 주던 형제자매, 지칠 때마다 위로와 격려를 보내준 남편과 민정, 그리고 내가 소설공부를 위해 시간을 낼 수 있도록 배려해준 나의 오너인 제부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 분들의 지지와 성원 덕분에 A4용지 속에 영원히 갇혀 있을 뻔한 제 이야기가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언제나 의지가 되는 소행성 문우들과 선생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되먹지 못한 합평으로 많은 분들에게 상처를 주었음에도 언제나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주시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끝으로 제 이야기가 살아 날 수 있도록 마지막 숨을 불어 넣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정희경 : 1968년 충북 청주 출생, 충북대 경제학과 졸업, 현재 경기도 광주시 거주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