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 한옥마을 방문…군산공항 국제선 취항 잘 해결될 것
<< 여성 최초 주한 대사인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 대사(57). 18일 오후 전주 한옥마을 학인당에서 만난 그는 눈이 부시도록 푸른 코발트블루 코트를 입고 있었다. 코발트블루가 매력적인 색이기도 했지만, 편안하게 그러나 신중하게 인터뷰를 이어가는 모습은 당당하면서도 따뜻했다.
2008년 9월 주한대사로 온 스티븐스 대사는 1975년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들어와 충남 예산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었다. 그 때 '심은경'이란 한국 이름도 얻었다.
미 대사관 공식 카페(CAFE USA, http://cafe.daum.net/usembassy)에 '심은경의 한국이야기'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스티븐스 대사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70∼80년대의 전주, 그리고 전라북도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으며, "전통에 대한 사랑과 창의력을 잘 조화시키는 전주 시민들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미국 대사로서의 권위 보다는 한국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애정이 가슴으로 느껴져 왔다. 1시간동안의 인터뷰는 그래서 더 즐거웠다. / 대담=김은정 편집국장 >>
▲ 전주가 처음이신가요?
"대사로서 온 것은 처음입니다. 하지만, 평화봉사단 시절인 70년대 몇 번 와봤었고, 80년대 젊은 외교관일 때에도 여러번 왔었어요. 전주는 좋아하는 도시 중 하나입니다. 진짜입니다. (웃음)"
▲ 가장 좋아하는 도시였으면 더 좋겠습니다. (웃음) 대사님께서 운영하는 블로그에 들어가 봤더니, 작년에 진안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녀가셨더군요. 진안, 참 좋죠?
"네. 참 좋아요. 제가 자전거를 같이 타는 소규모 클럽이 있는데, 그 클럽에서 진안으로의 자전거 여행을 계획했던 것입니다. 시골 풍경을 보면서, 사람들이 아름다운 경치와 전통을 어떻게 보존시켜 나가고 있는 지 알 수 있었지요. 그 때 한 개인이 정미소를 사들여 공동체박물관으로 활용하는 곳에 가봤습니다. 정미소가 그 예이지요. 이제는 한국인들 조차 정미소를 잘 볼 수 없잖아요."
▲ 오늘 전주 한옥마을을 둘러보셨는데, 어떠셨나요?
"오늘 전북도지사와 전주시장을 만났습니다. 이 지역의 깊은 역사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옥마을을돌아보는 일은 특히나 즐거웠어요. 70년대, 한옥이 있어서 전주에 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도 한옥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시기였습니다. 참 특별한 느낌이었는데, 다시 와보니 물론 달라진 점은 있지만 여전히 좋은 느낌이 살아있어 좋았습니다.
전주향교를 방문했을때는 향교 선생님께서 옛날에는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예절 수업을 받고 있는 꼬마들을 보니 과거나 지금이나 한국에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교육열이지 않은가 싶습니다."
▲ 대사님은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으시더군요. 블로그에 판소리와 '라스트 포 원'에 대해 써놓으셔서 반가왔습니다.'라스트 포 원'이 전주 아이들이라는 것 혹시 알고 계신가요?
"네. 알고있어요. 2008년 초 워싱턴에서 근무할 때 <플래닛 비보이(planet b-boy)> 라는 영화를 통해 '라스트 포 원'과 브레이크 댄싱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전주의 춤 추는 아이들이 처음에는 부모님께 인정받지 못하지만 결국에는 감정적인 몸짓을 만들어 내고, 나중에는 아버지도 아들이 댄서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한국에 도착했을 때 그것에 대해 더 알고 싶었습니다. 그 영화를 보면 세계적인 브레이크 댄스에 새로운 창조성과 에너지를 불어넣은 한국 비보이의 역할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한번 보세요." 플래닛>
▲ 전주가 전통문화가 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예술에 대해 열려있는,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이미 잘 알고 계시는군요. (웃음) 오늘 경기전도 둘러보셨죠?
"사실 한국 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개인적인 차원 뿐만 아니라 외교관으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직접 현장에 와서 한국 역사의 중요한 시기를 보는 경험자체만으로도 흥미로웠습니다. 셰익스피어가 '과거는 현재의 서막'이라고 말한 것처럼, 과거를 이해하면 할 수록 현재의 일을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올해가 경기전에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봉안된 지 6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태조 어진은 조선시대 왕의 초상화로는 유일본입니다. 역사적 가치가 높은 만큼, 600주년 기념행사를 국가적 행사로 추진하고 싶은데 쉽지가 않습니다. 혹시 이러한 문화유산이 미국에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어떤 국가든지 역사를 인식하고 이해하고 기록하는 방식은 항상 변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참을 생각하고)
사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어떻게 보면 객관적이 되기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역사 자체도 여러 겹으로 쌓여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이해하는 것도 여러 세대, 평생에 걸친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미국보다 역사가 긴 한국 같은 나라는 더하겠지요. 미국에서도 어느 쪽에 중요성을 부여하느냐에 대한 해석은 항상 변한다고 생각합니다.
70년대 왔을 때, 한국은 유교국가라는 인식때문인지 중국 문화를 받아들여서 한국적으로 해석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살다보니 얼마나 한국적인 것이 많은 지, 한국 민속이 많은 지 알게됐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도 매료된 것이 많아서 놀라웠죠. 동시에 한국 문화와 역사가 얼마나 다양한 측면이 있는 지 깨닫게 됐습니다."
(사실 이 질문에서 그는 거침없이 답하던 지금까지의 모습하고는 달랐다. 말문을 열기까지 유독 오랜 시간이 걸렸다.)
▲ 한식, 좋아하신다면서요?
"네. 점심도 많이 먹었어요. 전주비빔밥을 좋아하는데, 아직 전주에서는 안먹어봤어요. (웃음)
한국 음식에 특별한 점이 있다면 신선한 재료를 쓴다는 것과 정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서양음식과 비교해 어느 쪽이 좋은 지 고르라고 할 때 힘이 듭니다."
▲ 방금 말씀하신대로 제철 음식, 신선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지금 한식의 세계화가 가는 방향은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비빔밥도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인스턴스식으로 만들고 있고, 발효식품도 건강식품이긴 하지만 신선함을 따진다면 생각들이 다를 것 같습니다.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한식의 세계화(그는 영어 대신 한국어로 '한식의 세계화'라고 말했다)에 대한 접근 방식이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이 세계에 알려짐에 따라 한국의 음식이나 요리방법을 알릴 수 있는 경로도 다양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얼마전 한국계 미국인 요리사가 트럭에서 불고기 타코를 팔기 시작해 이제는 고급 레스토랑을 오픈한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그 경우 완전한 한식은 아니지만, 한국적인 아이디어와 멕시코 문화를 접목시켜 커다란 성공을 이루지 않았습니까? 이것도 한식의 세계화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 화제를 좀 바꾸겠습니다. 사실 전북의 관심은 군산공항 국제선 취항 문제입니다. 도지사 방문 자리에서도 입장을 밝히셨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을까요?
"몇 달 전 도지사께서 서울에 왔을 때 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이후 샤프 사령관(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 레밍턴 장군(미7공군사령관 제프리 레밍턴 장군)과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고,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미국 쪽에서 긍정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고 낙관하고 있습니다. 도지사께도 소파위원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희망적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미국은 미국 쪽대로 하지만 한국 쪽에서도 이민이나 관세 측면에서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다시한번 명백히 말하자면, 거쳐야 될 과정은 있지만 조짐들은 긍정적입니다."
▲ 아마 내일 가서 보시면 군산공항 문제를 빨리 해결할 필요가 있겠다 생각하실 겁니다. (웃음)
"내일 군산에 가보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가서 직접 전체적인 계획을 보고나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 쪽(새만금)에 투자에 대한 관심도 많다고 들었는데, 미국 기업들이 어떤 기회를 얻을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제가 해야될 일들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내일 그런 전체적인 모습과 계획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새만금도 방문하시는데, 새만금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사실 (새만금이) 정부에 있어서는 어려운 결정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국가든지 개발과 환경의 균형을 맞추기는 힘듭니다. 특히 한국은 국토가 좁기 때문에 더더욱 도전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새만금을 통해) 이 지역에 경제적인 발전이 계속 일어나길 바랍니다.
오바마 미 대통령도 미국의 인프라를 현대화하고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해 왔습니다. 미국은 큰 나라이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아직 KTX같은 고속열차도 없고, 비포장은 물론 아직 길이 나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며, 얼마만큼의 땅이 길이 없는 곳으로 남겨져야 하고 그렇다면 접근권은 누가 가져야 하는 지 이 모든 것을 민주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재조림을 하는 데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이 해외 원조를 하고 있는데, 재조림에 많은 비중을 두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전북 방문 이틀째인 19일 새만금 방조제를 둘러본 스티븐스 대사는 한국말로 "백문이불여일견이라더니 정말 대단하네요. 새만금은 한국의 만리장성입니다"라며 감탄했다. 방명록에는 "큰 꿈(vision)이 실현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적었다. 그는 "새만금에 온 첫 미국대사가 돼 기쁘다"며 "방조제가 개통되면 많은 사람이 올 것 같다. 전북도가 요청한 군산공항의 국제선 취항은 물론 미국의 투자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활동의 폭이 좁습니다. 여성대사로서 외교관을 지망하는, 특히 지방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제껏 일했던 많은 직책에서 최초의 여성이었던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제가 한국에는 미국대사로 왔지 여성대사로 온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대사란 점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십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미국이 중요한 자리에 여성대사를 보낸 것을 보고 많은 격려를 받는다는 말을 할 때면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여학생이나 남학생이나 국제관계와 관련된 커리어를 가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주는 조언은 열심히 공부하고, 많은 경험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가 많다는 것도 말해주고 싶습니다.
많은 미국인들이 남녀 상관 없이 미국을 대표해 각 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인들도 남녀 상관 없이 외교나 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낙관하지만, 물론 도전도 있을 것입니다. 기성세대의 한국 여성들이 이제까지 벽을 깨뜨려 왔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많기 때문에 젊은 한국 여성들은 어떤 측면에서는 개척자 역할도 해야 할 것입니다. 각각의 개인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발휘할 때 국가 전체가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 전주를 다녀가신 뒤 전주의 팬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웃음)
"여러해가 지났지만, 전주와 전북에 다시 오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 곳의 아름다운 주변환경은 정신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전주의 정신이라는 게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이기도 하겠지만 항상 과거로부터 배우고 그것을 보존하며 창의력의 원천으로 삼으려는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그런 정신이 이 곳에 남아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전통에 대한 사랑과 창의력을 잘 조화시키는 전주 시민들에게 존경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문화로 격려해주시니 전주시민들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웃음)
평소 자전거를 즐겨 타는 스티븐스 대사는 1박 2일의 전북 방문 일정을 마치고 군산에서 충남 논산 관촉사까지 금강을 따라 70km에 이르는 거리를 자전거로 이동했다.
/정리=도휘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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