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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나도 그냥 가는 게 인생"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풍물시장에서 음반을 파는 김영조(71) 할아버지.

 

온종일 스피커에서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와도 김 할아버지의 얼굴엔 괴로운 기색 하나 없다.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김 할아버지는 베트남에서 총포 소리 때문에 청력이 저하돼 소리를 잘 들을 수 없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김 할아버지는 살길이 막막해지자 청계천 벼룩시장으로 갔다. 고물상과 쓰레기장을 뒤지면서 좀 쓸만하다 싶은 물건은 죄다 모아 팔았다. 갖은 고생 끝에 리어카도 장만하고 전세방도 얻고 이제 좀 살 만해졌는가 했더니 이번엔 고엽제 후유증으로 앞이 잘 안 보이고 제대로 걷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김 할아버지는 몸이 좀 낫자 다리를 절며 다시 청계천으로 나왔다.

 

그때 시작한 것이 음반 장사였다. 어린 시절 음악을 좋아했던 김 할아버지는 당시 유행하는 대중가요 대신 10년 정도 지난 노래를 틀었다. 구성진 옛 노랫소리에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고, 할아버지 가게엔 차츰 단골손님이 늘어났다.

 

김 할아버지가 가장 좋은 노래로 꼽는 것은 송대관의 '인생은 생방송'.

 

"흔히들 그러잖아. 내일 하면 되지, 뭐. 다시 하면 되지, 뭐. 그런데 그러면 안 돼. 말 그대로 인생은 생방송이거든. 두 번 반복할 수가 없어. NG가 나면 나는 대로 가는 거야. 최대한 안 내려고 노력하면서 그대로 가는 거지. 내 인생도 참 NG가 많았지. 그래도 이제는 잘 풀려나가는 것 같아. NG 났다고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 아니겠어?"

 

청계천 노점상들의 애환을 담은 '인생은 생방송'(멋진세상 펴냄)이 출간됐다.

 

청계고가도로 아래 형성된 벼룩시장은 추억의 물건을 파는 장소이자 노점상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도시민들은 이곳에서 옛 물건들을 보며 향수를 달랬고 추억을 나눴다.

 

청계천 복원으로 노점상들은 신설동 풍물시장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변함없이 삶에 대한 희망과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풍물시장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박명숙(69) 할머니.

 

남편을 식도암으로 먼저 떠나보내고 우울증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냈던 박 할머니가 살아갈 희망과 활력을 되찾은 곳도 청계천 벼룩시장이었다.

 

"난 지금까지 큰 욕심 안 부리고 그냥 그때그때 주어지는 것을 고마워하면서 즐겼어요. 그래서 행복했던 거죠. 대단한 꿈은 없어요, 앞으로도 늘 이렇게 웃고 사는 것, 그게 내 꿈이에요."

 

책이 전하는 박 할머니의 작은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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