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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밥상] (18)김현주 이성당 사장

"팥앙금빵·야채빵 등 가장 오래된 빵이 가장 깊은 맛 내죠"

"탁구야, 너는 빵이 왜 좋으냐?"

 

"빵에서 나는 따뜻한 냄새가 좋습니다."

 

"스승님은 왜 빵이 좋으십니까?"

 

"그야 사람이 먹는 것이니 좋지."

 

"그럼 저도 그리 바꾸겠습니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열기는 사그라 들었지만, 윈도 베이커리로 울고 웃는 역사를 간직한 곳이 있다. 군산시 중앙로 1가에 위치한 제과점'이성당'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팥앙금빵과 야채빵, 팥빙수의 맛을 못 잊는 출향인들은 명절만 되면 이곳을 찾는다. 구 군산시청 마주한 곳에 자리 잡아 계모임과 친목모임이 돌아가면서 열리는 만남의 광장으로도 유명하다. 지난달 30일 5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이성당'의 사장 김현주(48)씨를 만났다. 제과점 이름은 이(李)씨 성(姓)을 가진 사람이 운영하는 빵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1920년대 일본인이 운영하던 빵집을 1945년 해방 후 주인이 떠나자 빵·과자공장을 운영하던 이석우씨가 가게를 인수했다. 그의 이종사촌인 고 조천영씨가 사장을 지냈고, 조씨의 아내 오남례씨와 아들 조성용씨가 가게를 맡았다가 2003년 며느리인 김씨에게 건네졌다.

 

하루 종일 빵에 둘러싸여 있는 그에게 '빵은 곧 밥'이다. 그는 "가장 오래된 빵이 깊은 맛을 내는 것 같다"며 "팥앙금빵과 야채빵, 소보로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다른 빵집에서는 시들해져 버린 메뉴지만, 이곳에서는 모든 세대들에게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금 빵이 옛날 빵과 똑같은 맛은 아니에요. 시대에 따라 고객들의 입맛도 변하는 거니까요. 처음 야채빵을 만들 때에는 샐러리가 없었고, 고기는 귀한 시절이라 넣을 생각도 못했죠. 고소한 맛을 내기 위해 섞는 마요네즈도 당시만 해도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곳 팥앙금빵은 유독 팥이 많다. (팥)소가 두툼해 하나만 먹어도 든든하다. 국산 팥가격이 비싸서 수입산과 섞지만, 적당한 온도에서 장시간 팥을 끓여내기 때문에 인기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의 남편 조씨는 30년 전통의 앙금전문기업 대두식품을 운영해오고 있다.

 

"우리 직원들은 팥을 많이 넣는 게 아니냐고 하는데, 내 생각은 달라요. '팥 마니아' 단골들이 많기 때문에 고집하는 거죠."

 

이성당은 2006년부터 쌀로 만든 빵을 출시해왔다. 밀가루 빵이 우선되는 국내 제과점에서는 쌀로 만든 빵을 발효시킬 수 있는 기술이 없었다.

 

"제빵사들은 일본에 가서 발효시키는 법을 배워와야 했어요. 일본 소비자들은 쌀의 풍미를 살린 거친 맛을 선호하는 반면, 우리 소비자들은 밀가루빵과 흡사한 부드러운 맛을 좋아하는 게 다른 점이죠."

 

건강 빵 '블루'는 쌀과 소금으로만 간을 해 담백하다. 그도 이 맛에 길들여져 자주 찾는다. "이스트를 쓰지 않고, 천연 효모로 발효해 찰진 질감까지 살렸다"는 그는 "덕분에 매출이 30% 정도 올랐다"며 환히 웃었다.

 

하루 손님은 400~500여 명 내외. 고객들이 이성당을 가장 많이 찾는 때는 언제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명절날 다음날이다.

 

"명절에 고향 왔다가 빵을 못 잊어 오시는 분들이 줄을 길게 늘어섭니다. 그런 날은 문 여는 게 두려워요. 빵 사려고 제빵실까지 들어 오시는 분도 있거든요. 빵이 나오자마자, 날개 돋힌 듯 팔립니다."

 

단골에 얽힌 추억도 많다. 군산에서 생선 도매업을 하는 한 고객은 20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성당 빵과 커피로 하루를 시작한다. 군산을 떠나 미국에 가서 사는 한 고객은 출국 직전 미국 가족과 친지들을 위해 줄 빵을 한아름 사간다. 전주에라도 이성당 분점을 내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성당은 체인점 내주는 일에 욕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분점을 내주면, 신선한 빵맛을 낼 자신이 없다"며 "냉장 유통을 하면 맛이 떨어진다"고 단언했다. '빵집은 빵이 맛있어야 한다'는 말은 결국 원칙을 지키는 데 있다고도 했다. 이성당은 오래된 역사 만큼이나 빵을 대하는 '진심'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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