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2-03 11:55 (화)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문화일반
일반기사

기품있는 음색과 정교한 합주력

지난 12일과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이하 RCO)의 공연을 지켜본 관객들은 대부분 자신의 귀를 의심했을 것이다.

 

실황 공연에서 가능하리라 믿기지 않는 최고급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콘서트홀을 가득 채우고 있었으니 말이다.

 

음 하나하나에 기품이 묻어나는 공명된 음색과 정교한 합주력은 세계 어느 악단도 따를 수 없는 RCO만의 놀라운 개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첫날, 아름답고 정돈된 연주 = 마리스 얀손스가 이끄는 RCO의 연주는 12일 첫 곡으로 연주된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 제3번에서부터 청중의 이목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탁월한 팀워크를 바탕으로 한 조직력 있는 앙상블과 화사한 목관 솔로, 잘 다듬어진 현악 앙상블 모두 완벽에 가까웠다.

 

특히 무대 뒤 신호나팔 직전, 얀손스의 지휘 아래 급격하게 가속하는 오케스트라의 드라이브와 인상적인 트럼펫 솔로의 극적인 효과는 마치 오페라 공연을 관람하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어서 연주된 야나체크의 관현악을 위한 광시곡 '타라스 부리바'에서 각 악기 군의 수석 연주자들은 마치 협주곡의 협연자가 된 양 개성적인 연주를 들려주며 뛰어난 기량을 과시했다. 국내 무대에서는 흔히 연주되지 않는 참신한 선곡이 돋보인 무대였다.

 

마지막 곡으로 연주된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제4번에서 얀손스가 이끄는 RCO는 차이콥스키 음악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흔히 극단적인 감정을 표현한 음악이라 여겨지곤 하는 차이콥스키의 음악이 이토록 아름답고 정돈된 음악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차이콥스키가 '숙명의 힘'이라 지칭했던 도입부의 '운명의 동기'에서조차 RCO의 금관 악기 주자들은 소리를 내지르지 않았다.

 

악기 간의 균형은 어떤 상황에서도 흐트러짐이 없었고 선율의 윤곽은 또렷했으며 음색은 잘 다듬어져 있었다.

 

결과적으로 차이콥스키 음악이 뿜어내는 전체적인 감정보다는 세부의 아름다움에 더욱 집중하게 했다.

 

주선율을 반주하는 첼로의 리듬이 그토록 생동감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현악의 피치카토(손가락으로 줄을 퉁기는 주법)가 그토록 부드럽게 울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경탄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그들의 섬세하고 독특한 연주에 감명받은 관객들을 기립박수로 환호했고 RCO는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중 마지막 곡을 비롯한 두 곡의 앙코르 연주로 환호에 답했다.

 

◆둘째 날, 조화로운 합주력과 고상한 음악성 = 13일의 음악회는 RCO의 개성과 잘 맞아떨어지는 선곡 덕분에 더욱 빛난 무대였다.

 

그들이 연주한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전원의 정경이나 다름없었다.

 

폭풍 장면에 생기를 더한 트롬본의 활약과 목가적인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 잉글리시호른 솔로에 이어 마지막 장면에서 펼쳐진 오케스트라의 쾌속 질주에 청중 모두 통쾌함을 느꼈으리라.

 

길 샤함의 협연으로 연주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에선 특히 2악장의 서정성이 돋보였다.

 

멘델스존의 협주곡은 흔히 '바이올린 협주곡의 이브'라 불리며 여성적이고 섬세한 곡으로 평가되지만, 샤함은 꾸밈없는 음색과 직설적인 어조로 이 작품의 핵심을 파고들었다.

 

활털을 바짝 조여 스피카토(활을 튀어 오르게 하는 주법)를 더욱 날카롭게 다듬어내고 달콤한 슬라이드를 배제한 그의 무뚝뚝한 연주 스타일은 때때로 섬세함과 우아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RCO의 연주 스타일과 어울리지 않는 느낌을 주기도 했지만 2악장에선 샤함의 담백하고 충실한 연주와 RCO의 세련된 연주가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움을 뽐냈다.

 

앙코르로 선보인 바흐의 파르티타에서 샤함은 미묘한 장식음을 가미해 바흐의 음악을 흥겨운 춤곡으로 표현해내며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마지막 곡으로 연주된 브람스의 교향곡 제4번에서 얀손스가 이끄는 RCO는 그들의 조화로운 합주력과 고상한 음악성을 최대치로 이끌어내며 감동을 전해줬다.

 

RCO의 연주로 드러난 브람스의 교향곡은 결코 무겁거나 심각한 음악이 아니었다. 바이올린 주자들은 저음현보다는 고음현을 많이 사용하는 운지법으로 맑고 반짝이는 음색을 만들어냈고, 2악장 후반에 바이올린의 가장 낮은 G선에서 연주하는 주제 선율에서도 그들은 활을 무리하게 짓누르지 않고 현을 자연스럽게 공명시키는 운궁법으로 품격을 더했다.

 

2악장 도입부를 여는 명상적인 호른과 3악장에서 세심하게 조절된 트라이앵글의 음색, 4악장을 빛낸 아름다움 플루트 솔로에 이르기까지 절제되면서도 기품 있는 곡 해석이 돋보였다.

 

 

교향곡 뒤에 펼쳐진 RCO의 뛰어난 앙코르 연주는 청중을 더욱 놀라게 했다.

 

가볍고 대중적인 작품으로 알려진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과 비제의 '아를르의 여인' 모음곡 중 '파랑돌'을 이처럼 세련되고 우아하게 연주할 수 있는 악단은 없으리라.

 

감격한 관객들은 앙코르 연주 후 RCO 단원들이 모두 퇴장할 때까지도 단원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며 최고의 연주로 행복한 밤을 선사한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