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가여서 시인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보다 나 자신이 시를 하나의 예술적 창작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컸습니다."
문학평론가인 방민호(45) 서울대 국어국문과 교수가 첫 시집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실천문학사)를 펴냈다.
대학원 재학 중이던 1994년 제1회 '창작과비평' 신인평론상을 받으며 등단한 그는 '비평의 도그마를 넘어' '문명의 감각' '감각과 언어의 크레바스' 등의 평론집을 발표하며 활발히 활동해온 비평가이자 국문학자이다.
평론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는 오랜 세월 묵묵히 시를 써왔으며 2001년 '현대시'를 통해 시단에 나온 시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비평가의 이미지, 비평과 시를 오가는 글쓰기는 '시인 방민호'가 넘어야 할 산이다.
그는 "일찍부터 시를 쓰는 것을 꿈꿨고, 비평을 하면서도 시에 대한 욕망이 끈질기게 살아났다"며 " 비평가로 시작했으니 당연히 그 이미지가 강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평가의 시가 아니라 예술작품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으로 썼다"고 말했다.
이번 시집에는 그가 지난 10여 년간 정성스럽게 써내려 온 65편이 담겼다. 이들은 사랑과 인생의 아픔을 전하며 때묻지 않은 울림을 전한다.
"사랑하는 사람이여/당신과 난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당신은 내 아픈 눈동자 속으로 내 안에 들어와/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당신이 먹고 싶은 것을 먹고/당신이 가라는 곳으로 가/당신의 모습으로 앉아 있다오/사랑이 깊으면 아픔도 깊어/나는 당신이 아픈 곳에 손을 대고/당신과 함께 웃지"('빙의' 전문)
사랑하는 이가 떠나간 후의 쓸쓸함을 절절히 드러내는 시에서 그는 학자나 평론가로서의 냉철한 글과는 달리 가슴 깊은 곳에서 스며 나온 시적 감수성을 선보인다.
"그러면 그때 나는/강가에 서 있는 키 큰 나무 한 그루/석양빛 속에 말없이 서서/노염 많던 생을 부끄러워해야겠다/참, 그때 세상을 많이도 미워했어/소홀하게도 살았으면서 말야"('강가에 선 나무가 되어' 중)
그는 "시를 쓸 때는 비평과는 전혀 다른 의식의 상태에 진입해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공부하는 사람답지 못하게 감정적인 면이 있어서 다행이었다"며 "이번 시집을 내면서 비평의 언어도 지금보다 더 많이 갈고 다듬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어 "단지 개인적인 고백이 아니라,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며 "쓸쓸하고 슬픈 감정을 노래로 쓴 시가 많지만 역설적으로 읽는 사람들의 마음이 따뜻해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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