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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추억

다들 한바탕 즐거웠던 ‘빵울치기’처럼 재밌고 뿌듯한 경쟁 되길 기대

▲ 최강욱 변호사·법무법인 청맥

‘빵울치기’란 게 있었다. 새봄이 오고 따스한 햇볕이 비치면 내가 살던 전주의 동네 아이들은 공터나 골목에 모여 테니스공을 갖고 주먹야구를 했다. 도루는 없었고 번트는 있었다. 자타 공인의 스타플레이어도 있었다. 맨손으로 해내던 기막힌 다이빙 캐치, 그리고 이어지는 역동작 송구는 물론이고, 한 손으로 잡아내는 직선타구와 왼손잡이도 2루수를 할 수 있었던 인간적인 경기~

주먹야구를 일컫는 말이 지역마다 다르다는 건 서울로 대학을 간 뒤였다. ‘찜뽕’이라는 친구도 있고 ‘짬뽕’이라 부르는 애도 있었다. 경상도 친구들이 말하는 ‘야구사위’ ‘주먹치기’도 있었는데, 사전에 등록된 단어는 또 ‘찜뿌’였다. 빵울치기는 방울(공)을 치는 거라는 유추가 가능하고 야구사위랑 주먹치기도 왜 그런지 알겠는데, 대체 찜뽕은 왜 그렇게 부른 건지 모를 일이다. 서울말이라고 다 표준말이 될 수 없다는 걸 다시 생각하는 순간. 하긴 ‘하루’라고 불렀다는 친구도 있었으니 정말 오리무중이다.

그 시절 아이들의 오락거리 가운데 ‘쌈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짤짤이’라고도 했다. ‘홀짝’보다 난이도가 높고 도박성이 강해 뒷자리 아이들의 필수종목이기도 하고 쉬는 시간은 물론, 소풍 때나 수학여행지에선 큰 판이 벌어지곤 했다. 동전을 길게 쥐고 손바닥으로 세 개씩만 잡아 세어내는 솜씨도 얼마나 훌륭했던지~.

쌈치기에선 하나 둘 셋을 ‘아찌, 뚜비, 쌈’이라 했다. ‘으찌, 뚜지, 쌈’이라 했던 애들도 있고 이것도 다른 데선 ‘으찌, 니, 쌈’ 이랬다니 참 다양하다. 타고난 도박 유전자 부족으로, 난 이 때도 관전만 하고 끼질 못했다. 끼어봐야 결과가 뻔하고 가진 돈이 없기도 해서.

그땐 컴퓨터 없어도 서로 참 재미있게 놀았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 끼고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해져만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니, 온라인 게임과 SNS를 통해 함께 놀며 활발하게 연락하고 있으니 본질은 같고 그저 형태만 바뀐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그래도 아깝게 잃어버린 놀이가 너무 많은 건 사실이다. 그 시절엔 땅에 금만 그어도 수십 가지 놀이가 가능했었는데, 그리고 하나같이 몸을 부대끼며 실컷 놀았던 게 참 좋았는데….

벌써 반년이 흘러 ‘타향에서’ 칼럼을 마무리해야 할 순간, 문득 어린시절의 추억이 떠오른 건 왜일까. 고향이란 늘 아스라이 잡히지 않는 무언가와 같다. 생각나면 애틋하고 찾아가면 늘 따뜻하고 낯설지 않은 곳, 그곳이 있었기에 아무리 어렵고 답답한 일이 생겨도 순간순간 머리를 식히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좀 있으면 지방선거다. 빵울치기의 스타플레이어와 쌈치기의 타짜들이 뒤섞여 서로서로 선택해 달라며 외친다. 하지만 무엇보다 유권자를 두려워하고 진실 앞에 겸허해질 수 있는 사람이 고향을 대표하고 지켜주길 바란다.

해태 타이거즈의 우승을 당연시하던 날들처럼 지역정치와 지방경제에도 늘 1등을 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국회의장, 야당 총재, 대통령후보를 배출한 지역이지만 전라북도가 지방자치의 모범이란 소식은 아직 없다. 돈 놓고 돈 먹는 쌈치기보다 다들 한바탕 즐거웠던 빵울치기처럼 재미있고 뿌듯한 경쟁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다른 선수들이 우리 동네 스타플레이어들을 부러워하며 하나라도 배우러 찾아오는 날들로 이어지길 바란다. 고향의 자랑거리야 셀 수 없이 많지만, 멋진 사람들이 모여 제일 잘 사는 곳이 되면 한없이 뿌듯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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