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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로 한일관계를 생각한다

송승엽 한반도 미래연구원 원장
송승엽 한반도 미래연구원 원장

추석 전 두 동생과 김제 선산을 찾았다. 선산은 산 중턱에 자리해 맑은 날 지평선 너머 바다가 뚜렷이 보인다. 성묘를 마친 후 광활한 지평선을 바라보니 문득 옛날 중학생 때 아버지와 함께 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아버지는 성묘 후 바다 쪽을 바라보시며 “저 서해 건너에는 중국이라는 큰 나라가 있는데 6.25전쟁 때 우리와 싸운 적국이어서 갈 수가 없다. 우리와 저 넓은 중국과 왕래하며 장사를 하면 좋을 텐데...” 라고 하셨다

그 후 나는 중국에 대해 막연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대학 때 중국어문학을 전공한 다음, 미수교 상태였던 1991년 코트라 베이징지사에 파견 근무하게 되었다

어느 날 중국 관리와 대화하면서 옛 이야기를 하며 아버님이 말씀하셨던 “서해 바다 건너편 큰 나라”에 오게 되어 감회가 깊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흥미 있게 들은 뒤 “그런데 중국에서 보면 바다가 동쪽에 있으니 ‘서해’ 아닌 ‘동해’이다” 고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위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기본상식을 새삼 깨달으며 당시 쟁점이었던 한일간 바다명칭 관련 문제를 생각했다

1992년 한국은 유엔에서 국제수로기구(IHO)가 발간하는 해도집(海圖集)에 한·일 사이의 바다를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는데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일본해’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배 결과로 퍼진 호칭‘으로 ‘동해’로 표기해야 하나, 일본과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는 ‘동해·일본해’로 할 것을 주장했다. 물론 일본은 받아들이지 않고 지금까지 오고 있다

한국에서 볼 때 동쪽에 있는 바다는 분명히 ’동해‘이며 ’일본해‘ 라는 명칭은 받아들일 수 없다. 일본도 자기 서쪽에 있는 바다를 ’동해‘라 부를 수 없다면 서로 받아 들일 수 있는 새로운 명칭을 만들어 사용하되 그 이전에는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는 방안이 합리적일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인접해있어 오랜 세월 많은 교류 협력과 여러 갈등이 있어 왔다. 특히 최근에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반발해 일본이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고 한국이 강경 대응하면서 최악의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한일관계 관련 1998년 10월 7일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후 첫 방일 때 격렬한 반대 여론에도 불구 ’천황폐하‘라는 존칭을 썼다. 그리고 다음날 일본 국회연설에서 “일본에게는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두렵게 여기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고, 한국은 일본의 변화된 모습을 올바르게 평가하면서 미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3년 후 2001년 12월 23일 아키히토 일왕은 68세 생일 기자회견에서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 자손이라고 ’속(續)일본기‘에 기록돼있는 사실에 한국과의 깊은 인연을 느낀다”고 말했다. 일본 왕가의 뿌리가 한국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일왕 스스로 처음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이었다.

위의 예처럼 양국이 ’역지사지‘의 상호 인정과 반성으로 심기일전해, 통 큰 화합의 미래로 나갈 수는 없을까?

마침 내년 7월은 동경 올림픽이 열리고 8월엔 우리 광복 75주년과 한·일 병탄 110주년이다. 이를 계기로 역발상하여 한국이 동경 올림픽 성공을 적극 돕고, 일본은 과거 역사에 대해 반성하면서 미래를 향한 새로운 우호협력 협정을 체결하면 어떨까?

그런 다음 가까운 시일 내 아키히토 전 일왕이나 나루히토 일왕의 익산 백제유적지 방문이 이루어지면 좋지 않겠는가!

/송승엽 한반도 미래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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