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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길상 시인 - 최일남 소설집 ‘국화 밑에서’

장례 풍습과 노년의 삶 생생하게 그려

최일남 소설에 자주 보이는 방언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비교적 최근작인 <국화 밑에서> 에도 방언과 비속어, 사어(死語) 및 한문 투 표현이 여전히 많다. 한문 투나 비속어가 태반인 소설은 읽기 불편하다. 현대적이거나 쉬운 말로도 작가가 지향하는 세계나 가치를 담아낼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면 이미 작품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물론 현대적 언어의 사용이 소설이나 시의 필수 조건은 아니다. 관행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도 모국어의 표현 가능성을 극대화한 이런 소설들은 어느 사이 쑥 들어가고 말았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구호 아래 말뿐만 아니라 우리 고유의 문화도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일반적인 상식에 비추어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공동체적 가치관이 사라지고 간편 장례 혹은 맞춤 장례라는 미명 하에 행해지는 요즘의 병원 장례의식은 윤리의식의 마비와 비인간성을 넘어 문화적 질병에 이른 수준이다. 작가는 이러한 현대 장례 풍습의 문제점을 여러 인물들의 대화와 해학적 진술을 통해 제시한다. 그 신랄한 비판은 ‘국화 밑에서’의 “아냐 영안실이 비좁기 때문에 바깥에도 따로 천막을 치던 시절이었어. 빈터에 가마솥을 걸고 고향에서 가져온 쌀로 어머니의 솜씨를 본떠지었다고 했는데 밥맛이 어떻게나 입에 달던지…… 고인의 유언에 따른 거랬어. 문상 오시는 분들에게 절대로 밥장사 밥을 드리지 말라고 일렀다는 그 어머니의 따뜻한 뜻과 유족의 정성에 감복할 밖에”라는 대목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들이 자주 쓰는 방언들은 사라져가는 이런 풍습과 문화를 복원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테면 개심심한, 하냥, 아사리판, 께복젱이, 들이당짝, 듬성드뭇하다, 어금버금, 칙살스럽다, 호도깝스럽다, 헤실바실, 가년스럽다, 심심파적, 어지빠른…….

이 소설집의 또 다른 한 축은 노년의 죽음에 대한 관심사가 반영된 ‘물수제비’다. 표면적으로는 먼저 떠난 아내의 죽음과 그 추억을 주제로 취급하고 있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작중인물들이 나누는 대화 도중의 침묵이다. 죽음은 세상 너머의 일이다. 죽음을 앞 둔 노인에게 여러 가지 상념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에 따른 침묵은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과 너무나 느슨한 삶에 대한 자성으로서의 침묵이 아닐까. 그 침묵 속엔 그의 정신적 재생의 가능성이 공존하고 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정신적 여유를 찾고 매사 진지하게 삶에 복무한다는 것은 어쩌면 노년에 되찾은 삶의 여유이면서 생과 사를 초월하는 행위인 것이다. ‘박교장’이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 그리 나쁜 건 아니”란 말을 한 것도 노년에 이르러 삶의 깊은 의미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의 소설에서 여러 장례 풍습과 노년의 삶이 방언, 비속어 및 사어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전주 출신인 최일남 소설가가 구사하는 전라도 방언들을 쏠쏠히 만날 수 있는 점도 이 소설집의 잔재미 중 하나일 것이다.

* 이길상 시인은 2001년 전북일보와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으며, 시와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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