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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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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성 전주왱이콩나물국밥 전문점 대표

연말연시는 콩나물국밥 장사하는 이에게 최대 대목이나 다름없다. 송년회며 신년회 모임이 넘쳐나고 모임은 대부분 술자리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 짓을 다시는 안 하리라 뻔한 거짓말을 되뇌며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모여 가엾은 위장을 달래기 위해 콩나물국밥을 마주하게 된다. 덜 깬 술기운에 버석한 얼굴을 하고서도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크리스마스며 연말연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렸을 때는 12월이 시작되면 ‘착한 아이’로 변신했다. 순진하게도, 크리스마스 직전까지 당분간만 착하게 지내면 산타클로스가 내 소원을 들어줄 거라고 믿었다. 서양의 명절을 제대로 아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최소한 크리스마스 즈음하여 돌아보고 반성할 줄 아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혹은, 솔직히 그저 누군가 내 소원을 들어주고 선물을 나눠준다는 것에 맹목적으로 매달렸을 수도 있다. 

온갖 말썽을 부리고 동네 아이들과 쌈박질을 해댈 때마다 엄마의 평화를 위해 외갓집으로 쫓겨났으면서 12월이 되면 제 발로 외갓집을 찾았다. 만석꾼인 외할머니 댁에서는 연말연시면 아무래도 묻어나는 콩고물의 크기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동네 교회에 가서 받는 과자 꾸러미와는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일꾼들이 받는 세경은 연 단위로 12월에 계산했는데 외할머니는 대부분 계약한 금액보다 넉넉하게 지급했다. 그러면 일꾼들은 그 고마움을 소소한 선물로 내게 나누어주었다. 올 때는 하나였던 가방이 집에 돌아갈 때는 두세 개로 늘어있기 마련이었다. 

먹을 것도 더할 나위 없이 풍족했다. 누구네 아기가 첫겨울을 건강하게 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누구는 신혼인데도 밤낮없이 일한 게 고마워서, 누구네 셋째가 새봄에 학교에 가니까, 작년에 사라졌던 일꾼이 다시 돌아온 게 반가워서. 꿰어다 놓으면 대충 그럴듯해지는 갖은 이유를 들어 외할머니는 하루가 멀다 하고 떡을 쪄 나누었다. 12월의 분위기는 집안의 경제력과 관련이 깊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나는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다. 

연말이면 가게에 수북이 쌓였던 달력이 사라진 지 여러 해 되었다. 눈앞에 늘어놓고 스케줄을 고민하게 했던 공연 초대장도 거의 모습을 감췄다. 국밥을 핑계로 찾아와 작은 선물을 쥐어 주던 이웃도 발길이 줄었다. 이런저런 나눔 봉사에 함께 하자는 권유가 줄고 대신 현금 기부 요청이 부쩍 늘어났다. ‘세계적으로 장기화된 경기 불황’ 어쩌고 하는 뉴스를 볼 필요도 없다. 손님들의 딱딱한 어깨에 걸린 12월의 무게가 다르다. 

12월은 매일이 크리스마스인 것 같았던 마법은 끝났다. 거리마다 캐럴이 울려 퍼지고 가벼운 관계에도 너그러이 선물을 주고받으며 딱히 이유 없이 인심이 후해져 가던 걸음을 돌려 구세군 바구니를 향하던 즐거움은 어디로 갔나. 이제 크리스마스는 교회나 백화점에 가야만 있다. 

/유대성 전주왱이콩나물국밥 전문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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